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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도 궁합이 있듯 계절에 어울리는 도시가 있다. 밀양은 가을에 어울리는 도시다. 밀양은 그때도 가을이었고. 지금도 가을이다.
영남루에서 내려다 본 밀양강
딱 이맘때였다. 무척 추운날이었다. 입술이 다 부르틀 정도로 강바람이 매서웠다. 난 그때 밀양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낙동강과 밀양강이 만나는 삼랑진에서 부터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밀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몸은 지쳤다. 그때 주유소 트럭 한 대가 서더니 날 밀양역에 내려주었다. 그렇게 만난 밀양의 밤은 스산했다. 빈 들판에 홀로 내동댕이 쳐진 느낌이랄까. 쏘주 반병에 곧바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밀양강에서 만난 KTX. 느린 강과 빠르게 달리는 기차
내가 기억하는 밀양의 가을은 추웠지만. 밀양 만큼 가을에 어울리는 도시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밀양강의 서걱이는 억새의 기억때문이다.
이 쯤에 밀양강에 가면 바람에 흐느끼는 억새를 만날 수 있다.
도보여행의 종착지인 부산이 코 앞이었지만. 난 하루 종일 밀양강에서 놀았다. 억새밭 한가운데서 낮잠을 자고 낚시대를 드리운 강태공 주변을 서성이기도 했다. 해질녘 추위에 떨었던 그 길을 다시 걷기도 했다. 낙동강과는 또 다른 밀양강에 반해.
빠르게 달리는 기차도 느리게만 보인다.
밀양강과 밀양시내가 한 눈에 바라 보인다.
3년 전,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을 따라 부산까지 걸었다. 봉화-안동까진 그나마 좋았다. 하지만 도시를 하나 둘 만나기 시작하면서 낙동강은 '낙똥강'이 되었다. 똥물이나 다름없는. 그에 반해 밀양강은 진짜 강이다. 말 그대로 촌 강이다. 수초섬과 모래톱을 휘감아 흐르는 동안 더 깨끗한 물로 정화가 된다. 아우토반 흉내라도 낼 모양인지 반듯한 직선화가 된 낙동강과는 차원이 다른 강이다. 밀양강은 삼랑진에서 낙동강과 만난다. 그나마 조금은 정화가 된다.
삼랑진의 낙동강역.
하루 네 번 열차가 지나가는 간이역이다. 일제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아픔의 역이다.
3년 전, 낙동강 도보여행때 낙동강역에서.
그때도 똑같은 사진을 찍었다. 화단에 심어진 꽃도 똑같다. 쓸쓸한 간이역도 그대로다. 그땐 더 추웠다.
100년이 넘은 삼랑진 인도교.
일명 콰이강의 다리라고 부른다. 다리 바로 옆에는 '콰이강의 다리'라는 찻집이 있다. 그때도 오늘도 난 그 찻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밀양댐.
검은 그림자 짙게 드리운 밀양댐.
다 추억이 되었다. 아픔도 슬픔도 그리움도 밀양강에 모두 내려 놓았다. 또 다시 밀양강을 찾는다면 그땐 꼭 따뜻한 봄날을 택하리라.
[tip] 부산이 코 앞이지만 밀양은 KTX 덕분에 가까운 거리가 되었다. 서울에서 딱 2시간 17분 정도면 밀양역에 도착한다. 서울역에서 06시 09분 부터 22시 28분 까지 하루 22회 운행한다. ☎ 문의 : 코레일 홈페이지(www.korail.com), 철도고객센터(1544-7788), 밀양시청 (http://tour.mirya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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