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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일기

'대근한' 하루

by 눌산 2008.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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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근하다.'는 '힘들다.' 또는 '피곤하다.'는 뜻의 무주 지방 사투리입니다.
충청도 방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어사전을 보니 '견디기가 어지간히 힘들고 만만하지 않다.'라고 나와 있네요. 무주는 전라도지만 충청남도 금산과 충청북도 영동을 접한 까닭에 전라도 사투리라기 보다는 충청도 쪽에 가깝습니다. 다른 접경 지역도 마찬가지죠. 전라남도 광양 사투리가 경상도 사투리와 뒤섞여 알 듯 모를 듯한 말이 나옵니다.

'대근하다.'는 우리 동네 이장 님이 자주 쓰는 말입니다. 일단 집에 오시면 첫 마디가 '대근햐~'로 시작합니다. 고추와 콩농사를 2천평 정도하십니다. 새벽이면 두부를 만들고, 요즘엔 나무하느라 무척 바쁘시죠. 어르신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아이고 죽겠네'가 있죠. 아마도 같은 의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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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했습니다. 벽난로와 모닥불용입니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모닥불이 제격이죠. 또 운치 있잖아요. 사실 매일해야 할 상황이지만 쉬엄쉬엄하고 있습니다. 여유있는 느린 삶이 아니라 아주 게으른 삶에 가깝죠. 그래도 할 건 다 합니다.^^

어제는 산에서 이장 님하고 다른 동네 분을 만났습니다. 다들 나무 하느라 정신이 없으시죠. 대부분 나무보일러를 쓰다 보니 농사철이 끝난 요즘 나무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눈이 오고 너무 추워지면 나무하기는 더 힘들어집니다. 산중에 살면서 나무를 사다 뗄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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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나무를 해오는 곳은 펜션 건너 임도가 끝나는 곳입니다. 약 3km 거리죠. 4륜 구동 아니면 갈 수 없는, 길이 아주 험한 곳입니다. 가까운 곳에도 있지만 아무래도 마을 분들 눈치가 보여서요. 특히 뒷집 어르신은 지게로 나무를 해오십니다. 그러니 마을에서 가장 젊은 제가 먼데서 해 올 수 밖에요. 이제 가장 먼 골짜기는 자연스럽게 저의 전용 나무터가 되었답니다.

이른 봄 산나물을 뜯으러 산에 가도 각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서면 서로 경쟁 할 것 같지만 전혀 그런 일은 없습니다. 불문율이랄까요. 상대방이 가는 곳은 가지 않는 원칙이 있습니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고사리나 두릅도 어린 순을 절대 꺾지 않습니다. 다음 사람을 위해 남겨두는 것이죠. 하지만 도시 사람들이 한번 지나간 산은 난장판이나 다름없습니다.(여기서 도시 사람은 개념없는 무분별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곱게 꺾어만 가도 다행이겠지만 뿌리채 뽑아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요. 그것은 급하게 많이 꺾을려고 하다보니 그런 일이 생깁니다. 욕심이죠. 가만 놔둬도 어차피 내 것이고, 오늘 꺾지 않는다고 내일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산에 흔하게 널린게 산나물이라지만 뿌리는 살려둬야 내년에 다시 그곳에서 산나물을 만날 수 있다는 진리도 욕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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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고요하던 펜션 주변이 가을 한철에는 적상산 단풍 산행을 오는 등산객들로 붐볐습니다. 특히 주말이면 주차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버스만 해도 한 30여 대는 오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사람 구경 실컷 했죠.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특히 주차문제인데요. 등산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등산로 입구에 펜션이 있다 보니 주변은 늘 등산객들이 세우고 간 자동차들로 북새통을 이루죠. 왜 그럴까요? 걷는 즐거움을 위해 오는 사람들인데 굳이 주차장을 놔두고 힘들게 주차하는 이유 말입니다. 좁은 인도에 차를 올리고, 교행이 힘들어 뒤엉키게 되고, 서로 먼저 차를 빼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도 합니다. 그것도 다 구경거리가 되긴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 각박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산에까지 와서, 단 하루 만이라도 좀 여유있는 마음으로 즐겼으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나무를 해다 쌓아 두는 뒤란 주차장 입구를 승용차가 막아버렸더군요. 전화를 해서 화부터 내고 나니 마음이 안좋아 다시 문자를 보냈습니다. 천천히 산행 마치고 내려오시라고요. 차 주인이 가면서 전화를 했습니다. 참 친절하시네요. 산에 가 있는 사람 한테 차 빼라고 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랬던 겁니다. 제가 유독 친절한게 아니고요. 적상산 산행 오신 분들 중에 주차장이 마땅치 않으면 저희 집으로 오십시오. 일요일은 한가하니까 얼마든지 세울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장작이 쌓여 가는 모습에 배가 부릅니다. 아무리 '대근하다' 해도 장작이 점점 높이 올라 가는 모습을 보면서 또 산으로 가게 됩니다. 장작이 천장 높이까지 쌓이는 날까지, 저는 산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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