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일(2005/10/2-11/22)간의 낙동강 도보여행 기록입니다.
안개가 자욱하다.
일기예보는 분명 오후 늦게부터 아침까지 비가 옴. 이었는데,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때론 우중 트레킹도 좋다.
너른 들녘에 가득 찬 풍요로움,
비단 이 풍산 들녘만의 일은 아니리라.
가는 비가 내린다.
안개로 흐린 시야, 고요한 들녘, 나 혼자네.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만 있을 뿐,
온 세상에 나 홀로인 느낌이다.
풍산 평야를 거로질러 병산서원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 만난 포장도로보다 이런 비포장 길이 훨씬 낫다.
비는 그치고,
하늘은 점점 밝아온다.
잠시 내린 비로 촉촉해진 대지에 생기가 돈다.
병산서원.
“여기는 옛날에 선비들이 공부하던 곳이니까,
우리 잠시 선비의 마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걸음은 사뿐히, 목소리는 낮게……. 알았죠? “
메가폰을 잡고 열심히 설명하시는 선생님,
한데, 아이들 웃음소리보다 선생님의 메가폰소리가 훨씬 큽니다.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윙윙거리는 소리가 무슨소린가 했더니만
바로 선생님의 메가폰 소리였군요.
병산서원 앞 강변,
소풍 나온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는 그만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선비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먼저 아이답게 노는게 더 중요하죠....
병산 마을을 벗어나 하회 마을로 가는 길입니다.
“풀이 우거져 가기 힘들거라요.”
“요즘은 '뱀이가' 많아 그냥 차타고 가지 그래요.”
마을 어르신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 이곳 병산마을 아이들은 걸어서
하회마을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아이들도 걸어 다녔던 길, 나라고 못가란 법있는가…….
근사한 숲길이 잠시이어 지더니 이내 길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내려선 백사장은 물침대가 따로 없군요.
'뱀이' 많아.....가 아니고, 꼭 '뱀이가' 많아 하십니다.
안동이나 봉화 지역 분들은 그렇게 표현하시더군요.
모래밭으로도 갈 수 없는 길,
길은 산으로 이어집니다.
역시나, '뱀이가' 많군요.
지겹도록 많이 만났습니다.
뱀띠지만 뱀은 죽어도 싫습니다.
뱀은 소리로 만납니다.
특히 독사 종류는 먼저 피하지 않고 웅크고 있어
낙엽 위를 스치는 뱀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하지요.
이렇게 풀이 우거진 곳에서는 땅바닥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한걸음 내 딛을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무서울 것 없는 저지만, 그래도 뱀이는 싫습니다.
뱀이가 무서운 산길이지만
이런 들꽃이나 이름모를 나무 열매를 만나는 재미는 역시 쏠쏠합니다.
때 아닌 제비꽃이 피어 있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는 법이지요.
우리네 인생도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오르막이 다 힘들지만은 않지요.
근사한 풍경을 만날 수도 있고,
고갯마루에서 만나는 시원한 바람도 좋습니다.
고개 너머로는 자동차도 다닐 만큼 길이 넓습니다.
하회 마을과 병산 서원을 잇는 도로 공사를 하다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돈 들여 굳이 도로 공사하느니,
지금 그대로의 오솔길 풀만 베어놓아도 훌륭한 상품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길 그 자체 만으로요.
왜 꼭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하회 마을을 찾은 여행자가
병산서원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의 마음이겠지만,
아이들이 걸어서 학교를 다닐 정도로 그리 멀지 않은 길이니,
산책 삼아 걸어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이제, 고개를 내려서면 바로 하회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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