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풍경 그대로가 한편의 영화, 충청북도 영동 궁촌리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황간 면소재지에 가면 유독 눈에 띄는 간판들이 있다. 손바닥만한 작은 동네에 올뱅이 국밥집들이 많다는 것인데, 삼도봉과 민주지산에서 흘러 온 황간천과 상주 쪽 석천이 만나는 곳이 황간이라는 것을 안다면 금방 이해가 된다. 1급수를 자랑하는 이들 하천에서 자라는 올뱅이(올갱이의 사투리)를 넣고 푹 끓인 국밥 한 그릇이면 전날밤의 숙취가 말끔히 사라진다. 인근 영동 읍내나 김천까지 소문이나 주당들은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이곳 황간까지 찾아온다.
영화 '집으로'의 주인공 김을분 할머니 댁.
자, 이제 국밥 한 그릇 비웠으니 영동 땅의 속살을 찾아 황악산으로 들어가 보자. 황악산(1,111m)하면 대부분 김천의 직지사를 통해 오른다. 영동군 상촌면 궁촌리와 등을 맞대고 있지만 대중교통도 없고, 대형버스가 진입할 수 없는 지리적 여건 때문으로 보인다. 더구나 봄가을의 직지사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한가로운 산행을 위해 바람재 목장을 통해 오르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황악산으로의 최단거리에 있는 궁촌리를 찾는 이는 거의 없어 보인다.
궁촌리를 얘기하면서 꼭 빼먹어서는 안될 일대 사건이 하나 있다. 평생을 산골 촌부로 살아 온 팔순 할머니(김을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집으로' 이야기다. 바로 궁촌리는 영화 '집으로'를 찍은 곳이다. 골짜기의 굽은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난 해질 무렵의 가을 산색을 배경으로 할머니와 손자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영화의 앤딩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바로 그 장면의 촬영장소는 새막골과 지통마, 점마로 나뉘는 궁촌리 마을 입구다. 어머니와 고향, 유년시절의 아픔, 먼 기억 속의 사진첩을 둘러보는 듯한 영화의 장면 장면은 대부분 이 궁촌리에서 촬영했다. 평생을 호두농사만 짓고 살던 주민들이 영화에 등장하고, 별 손질 없이 마을 풍경 그대로가 한편의 영화였다.
궁촌리는 황악산 7부 능선에 올라 있다. 등산에 버금가는 수고가 따라야 하는 산골마을 여행이지만 걸어서 가야만 보이는 것들도 많다. 노란 씀바귀꽃이 흐드러지게 핀 궁촌저수지를 지나면서 뒤를 돌아보면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조망에 아!, 소리가 절로 난다. 바로 민주지산과 각호봉 능선이다.
빈 집이 더 많은 새막골
궁촌리는 이 저수지 위부터 시작한다. 영화의 주인공 김을분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점마와 그 옆 골짜기인 새막골, 영화의 주무대가 되었던 지통마로 나뉜다. 모두 행정상으론 궁촌2리. 하지만 각각의 마을을 이어주는 길은 산 아래로 내려와 다시 산 위로 오르는 식으로 이어져 한 마을이지만 새막골에서 지통마는 걸어서 1시간이나 걸린다고. 곤천산과 황악산의 가슴부분에 이 세 마을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니 산자락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궁촌리에 가면 요즘 보기 드문 흙집을 만날 수 있다. 흙장(벽돌)을 찍어 쌓은 집, 살을 세우고 양쪽에 흙을 바른 뼈대집, 통나무를 우물정자로 쌓고 그 사이사이에 흙을 채운 귀틀집 등 모두가 누런 황톳집이다. 아마 이런 환경이 영화의 이미지와 딱 들어맞았을 것이다. 그리고 순박한 산골주민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이 세상을 울음바다로 만들었을 것이다.
새막골에서 호두와 담배농사를 짓는 김팔수, 조유숙 부부는 삼도봉 아래 설보름이란 곳에서 태어나 부친을 따라 들어와 줄 곳 농사를 짓고 있다. 1남2녀를 둔 부부의 삶은 황악산에서 넘어오는 아침해를 보고 시작해 민주지산으로 넘어갈 때까지 산비탈을 개간한 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의 집에서 바라다 보이는 풍경은 한마디로 그림같다. 대자연의 넉넉함과 그의 표현처럼 막힌 속이 뻥 뚤릴 만큼 탁 트인 전망이 아마 그를 평생 산골 농부의 길을 걷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궁촌리에 가면 영화 속에서 느꼈던 고향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새막골 계곡
[Tip]
경부고속도로 황간나들목으로 내려서자마자 우측 물한계곡 표지판을 따른다. 10분쯤 가면 상촌 면소재지인 임산, 579번 지방도를 따라 좌회전해서 김천 우두령 방향으로 가다 활골에서 황악산 방향으로 접어들면 궁촌리다.
숙박은 인근 물한계곡 주변에 민박이나, 도마령 너머에 있는 민주지산 자연휴양림(043-740-3437)이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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