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나만한 부자 없을 걸요. 축령산을 정원으로 삼고 살자나요.”
편백나무 숲에 귀틀집 지은 두메문화전도사 변동해 씨
숲은 고요하다. 숲이 주는 평온한 분위기에 산란했던 마음도 어느새 평정심을 되찾는다. 숲이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나무가 내뿜는 휘발성 향기)에 있다. 아침 햇살이 숲으로 찾아드는 시간이라면 그 향이 코를 찌른다. 특히 편백나무는 산림욕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라남도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 숲이 주목 받는 이유이다.
숲에 들어 자신을 돌아보라
축령산 편백나무 숲은 영화마을로 알려진 장성 금곡마을이 들목이다. 입구에서 부터 하늘을 향해 곳추 선 이국적인 풍경의 편백나무가 가득 들어 차 있다. 느린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을 뒤따라 걸었다. 길은 숲으로 스며든다. 이 길이 끝나는 곳에 두메문화 전도사 변동해 (57)씨의 귀틀집이 있다.
“우리집엔 가족이 많아요. 나무, 풀, 새들이 모두 가족입니다.”
차부터 나누자며 사랑채로 이끄는 변동해 씨의 첫마디에 산중에 들어 온 것을 실감케 한다. 그는 산을 닮았다. 손수 가꾼 야생차를 내는 손이 투박하다. 집안 구석구석이 그의 손을 거쳤다. 손이 투박한 것은 흠이 아니라 훈장이라고도 했다. 이 집에는 마침 외출 중인 부인 김혜성(56) 씨와 아들 변성천(28) 씨가 함께 산다.
장성 군청 공무원이었던 변동해 씨가 축령산 자락에 터 잡은 것은 만 10년 전이다. 손수 흙집을 지어 세심원(洗心院)이란 당호를 걸고 ‘만인의 별장’으로 이용하게 했다. 열쇠 100개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언제든 무료로 이용하게 했던 것.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난 10년 동안 수천 명이 다녀갔다.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 따로 없을 정도로 갖가지 사연과 인연을 만들었다. 그러던 그가 지난 2008년 겨울, 숲에 깃들어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의 휴림(休林)을 열었다. 무료로 이용하는 세심원과는 달리 휴림은 최소한의 유지비 목적의 비용을 받는다. 그는 문화 보시를 위해서라고 했다.
변동해 씨의 집은 고창의 소금과 장성의 곡물이 넘나들었던, 한때는 잘(?) 나가던 축령산 중턱 들독재 잿마루에 있다. 주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隱士里) 1번지이다. 들독재를 기준으로 고창 땅과 장성 땅이 나뉘지만, 그건 행정상의 의미이고 모두가 축령산을 품고 있는 한 동네나 다름없다.
‘휴림’은 전라도 땅에서는 보기 드문 귀틀집 구조의 흙과 나무로만 지은 집이다. 이곳에서 난 편백나무를 우물 ‘정(井)‘ 자로 쌓아 올린 후 그 사이사이에 흙을 채워 넣는 방식이다.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나 볼 수 있는 이 귀틀집을 그는 손수 지었다고 했다. 직접 강원도 평창의 귀틀집 전문가를 찾아가 집짓는 법을 배우고, 전라도 목수들과 함께 설계에서부터 마지막 내부 마무리 공사까지 대부분의 작업을 손수 했다.
“콘크리트 건물들이 대한민국의 대부분을 덮고 있는 요즘, 한국의 전통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후세에 남기기 위해 지은 집입니다. 지진으로 축령산이 무너진다고 해도 이 집은 굳건히 그 형태를 유지할 것입니다.”
손수 지은 자신의 집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만큼 정성을 지은 집이라는 뜻일 것이다. 통나무와 흙이 주재료이다 보니 못 하나 사용하지 않았다. 덕분에 지진에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하다는 것이다.
손수 지은 귀틀집을 두메문화 전파의 공간으로
“대한민국에 나만한 부자 없을 걸요. 축령산을 정원으로 삼고 살자나요.”
허허. 듣고 보니 그렇다. 남들은 숲길 한번 걸어보자고 천리길 마다 않고 달려오는데, 그는 이 광활한 숲을 혼자 독차지 하고 앉아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통이 커져요. 축령산에 뜨는 달과 별을 혼자만 보기에 너무 아깝더라고. 세상 사람들이 이곳에서 한 사흘만 자연의 순환을 지켜보면 세파에 찌들어 생긴 마음속의 병이며 온갖 잡것 다 털어 낼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이 집 문을 연거에요.”
사랑채에서는 그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인문학 강좌를 열었다. 경주의 한학자 박영호씨와 축령산 ‘휴휴산방’의 주인인 동양철학자 조용헌씨, 숲과 문화연구회의 전영우 국민대 교수 등이 다녀갔다. 앞으로도 꾸준한 기회의 장을 만들 계획이다. 또한 30년 이상 이력이 붙은 전통 야생차와 술, 장 등을 전수하는 청년대학 설립의 거창한 꿈도 갖고 있다.
휴림은 사랑채 외에 다섯 채의 공간이 더 있다. 이 공간들은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제공된다. 느림을 몸으로 느끼며 자연과 더불어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돈만 주면 잘 수 있는 집이 아니라 최소한 주인의 심사를 거친 사람만이 이용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술과 고기의 반입을 금지시킨 것. 대신 차는 무한대로 제공한다. 술대신 차를 마시며 마음을 정화하라는 얘기다. 편백나무의 은은한 향과 야생차만으로도 취기가 돈다.
“산에서 기다림을 배웁니다. 매일같이 변해가는 산색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낍니다. 우리 집에 TV는 없어도 더 많은 볼거리가 있어요.”
산에서 느리게 살다보면 하루가 길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딴 세상 얘기로만 들리겠지만, 변동해 씨의 말처럼 딱 사흘만 자연과 벗하며 지내다 보면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산이 주는 넉넉함일 게다. 산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글, 사진> 눌산 여행작가 www.nusan.net
월간 산사랑 5,6월 호 http://sansarang.kfcm.or.kr/<축령산 편백나무 숲길>
'여행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레일 칼럼] 기차는 나의 스승이었고, 어머니였다. (4) | 2010.07.08 |
---|---|
숲길이 아름다운 사찰, 15곳 (0) | 2010.06.03 |
5월의 금강, 초록물이 흐른다. (0) | 2010.05.17 |
여행은 사람이다. (4) | 2010.04.21 |
지리산 자락 부전골 산골아낙 (4) | 2010.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