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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건물로 이전한 곡성 5일장과 옛 장터
낡은 함석지붕과 그 함석조각들을 다시 얼기설기 이어붙인 담장은 영락없는 영화셋트장입니다. 5일에 한번 열리는 장날만 아니라면 아마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장이 서는 날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이 골 저 골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장터는 북적거립니다. 순댓국밥집 가마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여기저기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곡성 오일장 얘깁니다. 눌산이 기억하는 세월만 40여 년입니다.
'기차여행'에 관한 취재를 의뢰받고 문득 떠오른 풍경들이 있었습니다. 어릴적 엄마 손잡고 졸졸 따라다니던 곡성 오일장 풍경입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여전히 그 분위기가 남아 있기에 딱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6월 28일. 3,8장인 곡성장터는 휑하니 맨 먼지만 날리고 있었습니다. 40년 기억이 잘 못 될리 없기에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봤습니다. 하지만 폐허에 가까운 황량한 장터는 모두 떠난 흔적들 뿐입니다.
상황은 이랬습니다. 지난해 9월 3일 자로 신축건물을 지어 이전했다고 합니다.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습니다. 두 다리에 힘이 쭉 빠져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이곳은 어머니의 체취가 남은 곳입니다.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어디에도 과거의 기억들은 없었습니다.
아, 저 구루마를 끌던 어르신을 기억합니다. 짐꾼으로 수십 년을 살아오신 분입니다. 저 구루마의 주인은 어디로 떠났을까요. 마음은 더 착찹해집니다. 괜히 왔나 싶어 빈 골목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뭔가 흔적 하나라도 더 건지고 싶은 마음에 기웃거려 봅니다.
하나 하나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이곳은 순댓국밥 집이 있던 자리입니다. 저기 저 커다란 구멍은 가마솥이 걸렸던 자리이고, 돈주머니를 찬 주인 아주머니가 늘 앉아 있던 자리는 그 옆입니다. 안쪽으로 나무탁자들이 있었고, 술 한잔에 거나해진 어르신들이 젓가락 장단에 맞춰 '나그네 설움'을 외치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뒤지며 눌산이 찾던 자리는 바로 여깁니다. 어머니와의 유일한 기억이 남아 있는 집입니다. 장날이면 이 집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3년 전 마지막으로 찾았을때 한 상에 3천원하던 백반집입니다. 지나가는 어르신께 재차 확인까지 마쳤습니다.
"맞어. 여기가 그 백반집이여"
장작을 지피던 아궁이가 보입니다. 시래기국을 끓이던 커다란 양은솥이 걸려있던 자립니다. 갈 때 마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던 그 아주머니는 이른 새벽부터 장이 파할 때까지 저 아궁이를 지키고 앉아 계셨습니다.
그래, 이제 니가 주인이구나. 너도 이사가지 그랬어. 여긴 먹을게 없을텐데....
짧은 눈맞춤을 하고는 후다닥 사라집니다...
화가납니다. 누가,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했을까....
한겨울 언 손을 녹여주던 깡통난로가 나뒹굽니다. 저기 저 앞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노가리 풀던 장꾼들이 떠오릅니다.
사람들로 붐비던 저 하천도 이젠 기생오래비 마냥 꽃단장을 했습니다. 아마도 '기생오래비' 같은 무식한 관리의 소행이겠지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는 발상에 침을 뱉고 싶은 심정입니다. 씁쓸합니다. 옛것이라면 뭐 하나 남기지 않는 이 나라가 원망스럽습니다. '신상' 좋아하는 이 나라 관리들이 죽이고 싶을 만큼 밉습니다. 저 낡은 장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왜 모를까요.
300 미터 거리에 신축건물로 꽃단장을 한 새 장터가 있습니다. 곡성 5일장은 사라지고 '곡성기차마을 전통시장'이란 간판이 걸렸습니다.
유치원생들이 장터 견학을 온 모양입니다. 뭘 배워갈 수 있을까요.
대도시 재래시장을 연상케하는 풍경입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장터를 찾는 '어머니' 뿐입니다.
좌판에 붙은 번호표가 초라해 보입니다.
곡성군 특산물 전시장도 갖춰져 있습니다. 관광객을 불러 모으겠다는 야심찬 계획이겠지요. 담장자를 만났더니 역시 그랬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도시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이상, 이 콘크리트 냄새나는 장터를 찾아 올까요.
어르신들이 윷놀이를 하고 계십니다. 옛 장터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풍경입니다. 그나마 오일장 분위기가 납니다.
옛 장터의 국밥집과 백반집도 함께 옮겨왔습니다. 또 다른 먹을거리를 추가해 별관에 따로 입주시켰습니다. 그 장터의 맛은 절대 낼 수 없을 겁니다.
아, 제 고향마을 가는 버스정류장입니다. 괜히 서성거려 봅니다. 이유도 없이 말입니다.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뭐 하나 남기지 않고 싹쓸이 하듯 이 땅의 옛 것은 죄다 사라지고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제 수탈의 현장을 보는 듯 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옛 것은 낡은 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낡아서 좋다는 것을 왜 모를까요. 씁쓸합니다. 화가 납니다. 장터 이전을 추진한 책임자를 만나 멱살이라도 잡고 뒤 흔들고 싶은 마음입니다. 당신은 어머니도 없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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