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모래시계’를 기억하시는지요? ‘고현정소나무’가 있는 정동진역은 이 드라마 하나로 대단한 유명세를 치루고 있습니다. 전라선 압록역에는 역시 모래시계에 등장한 ‘김영애소나무’가 있습니다.
태수의 어머니 역으로 분한 배우 김영애가 빨치산 남편의 뼈를 지리산 자락에 뿌리고 휘날리는 스카프만 남긴 채 기차에 뛰어 들어 생을 마감하는 장면을 촬영한 곳이 바로 압록역입니다. 그 때 등장한 역 구내 소나무가 '김영애소나무'입니다. 정동진의 유명세에 밀려 그리 많은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여전히 그 소나무는 압록역 구내에 서 있습니다.
압록역은 섬진강과 17번 국도가 나란히 달리는 전라선 기차역입니다. 74년 동안 승객과 화물이 드나들었던 압록역은 지난 2008년 12월 1일부터 열차가 서지 않습니다. 전라선 직선화 개량공사로 역기능을 상실했으니 문을 닫은 것이지요.
압록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변역입니다. 섬진강을 굽어보는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압록마을 역시 강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넓은 백사장은 오래전부터 강수욕장으로 소문 난 곳입니다. 눌산은 이 마을에서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은 고요해 보이지만 춘양목으로 유명한 봉화 춘양역 못지않게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한창 때 압록역 주변은 색주가가 대도시 뺨칠 정도로 많았고, 벌목꾼들로 득실거렸습니다. 벌목이 주업이었습니다. 압록역으로 모여든 나무는 기차를 이용해 서울, 부산, 대전 등 대도시의 땔감이나 선로 밑에 까는 침목용으로 팔려나갔습니다. 그 시절 제 아버지는 목상(木商)이었습니다. 벌목을 하고, 숯을 굽는 숯쟁이였습니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 위치한 압록마을은 여름이면 형형색색의 행락객들로 가득했습니다. 기타를 둘러 멘 대학생들은 밤을 지새우며 추억을 쌓았고, 봄이면 매화와 산수유 꽃이 만발해 꽃길이 펼쳐집니다. 압록(鴨綠)이란 지명은 섬진강과 보성강의 푸른 물이 합류(合流)하는 곳이라 하여 합록(合綠)이라 부르다가 400여 년 전 마을이 형성되면서 맑은 물에서만 자란다는 천어(川漁)와 오리과의 철새들이 많이 날아들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만큼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겠지요.
압록마을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강감찬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이곳을 지나다 하룻밤 숙영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모기가 너무 많아 잠을 이룰 수 없자 장군은 칼을 빼들어 모기를 모두 베어버렸답니다. 그 후 압록에는 모기가 사라졌다는 얘기입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실제로 압록 강변에 가면 모기가 거의 없습니다.
맞은편이 보성강이고 오른쪽이 섬진강입니다. 압록마을은 두 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인 셈이지요. 눌산이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저 강의 절반은 모래밭이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유는 다리공사 때문입니다. 물의 흐름이 바뀌고 물살이 거세지면서 모래가 사라진 것이지요. 또 무분별한 모래채취때문이기도 하고요. 지금도 여전히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제방을 쌓는 모양입니다. 축대를 쌓고 강과 턱을 주는 공사입니다. 미친 짓입니다. 결국 남은 모래까지 사라 질 수밖에 없습니다.
압록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습니다. 텅 빈 플랫폼에서 한참을 서 있었지만 기차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승객도 역무원도 없는 압록역은 이제 저 '김영애소나무'가 유일한 승객입니다.
혹시 멈추지 않을까 하는 턱없는 욕심을 부려보지만 새마을호 열차는 무심하게도 그냥 지나쳐버립니다. 압록역은 이제 간이역이란 이름으로도 부를 수 없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눌산이 다이빙을 하고 놀던 자라바위를 찾아냈습니다. 그땐 무지 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이빙 하다 팬티가 벗겨진 기억들 있지요? 검정고무줄이라 잘못하면 훌러덩 벗겨집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커피 한잔을 빼들고 마을이 잘 보이는 정자에 앉았습니다. 강은 여전히 말이 없고, 유유히 흘러 갑니다.
압록마을은 섬진강기차마을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자전거 하이킹 코스가 지나기도 하고, 섬진강래프팅 장소이기도 합니다. 17번 국도를 타면 지리산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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