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디자이너에서 마을디자이너로 변신한 김주성 문정숙 부부
강원도가 좋아 인제에서 4년을 살았다. 겨울이면 고립이 일상인 열악한 환경이지만, 눈 속에 고립되는 그 일상이 좋았다. 철이 덜 들었다고들 얘기하겠지만, 여전히 그 눈이 좋다. 대설이 지나고 며칠 되지 않아 영동지방에 폭설 소식이 들여왔다. 무려 50cm. 영동고속도로 일부 구간이 통제되고, 학교까지 휴교하는 폭설 속에 배낭을 꾸렸다. 눈 속에 갇힌 강원도 양양 느르리골에 7년 전 정착한 부부의 산골생활 이야기를 듣고 왔다.
첩첩산중 느르리골에서 시작한 인생 2막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하월천리 느르리골. 일출의 명소인 남애해수욕장에서 불과 8km 거리에 있는 산골마을이다. 하지만 그곳은 국내 오지여행가인 필자도 깜짝 놀랄 만큼 첩첩산중 오지였다. 동해에서 잠시만 벗어나도 산골마을이 자리잡은 양양의 지리적 특성인 것이다. 더구나 폭설에 진입로까지 두절되 꼬박 1시간을 걸어가야 했다. 유독 소나무가 많은 산비탈에는 첫 눈에 부러진 설해목이 눈에 띈다. 하월천리 마을 도로에서 2.3km, 눈길이라 발걸음이 더디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올라서자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계곡을 멀리 두고 산 능선으로 도로가 나 있다. 온 세상에 눈에 뒤덮힌 오목한 골짜기 안에 황톳집 한 채가 눈 속에 푹 쌓여 있다.
이 깊은 산골짝에 누가 살까. 느르리골 주인은 서울에서 광고디자이너로 직장생활과 사업을 했던 김주성(54) 문정숙(52) 부부다. 7년 전 느르리골에 내려와 화전민이 살다 떠난 오두막을 수리해 산골생활을 시작했다.
“벌써 7년이나 되었네요. 처음에는 길이 없어 주문진 쪽에서 두 시간을 걸어 들어왔어요. 새로 길을 내고,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을 수리하는 일부터 시작했죠.”
굳이 왜 이런 산골일까. 길도 없는 골짜기에,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문화적인 혜택도 없는데 말이다. 산이 좋아 산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은 무의미하겠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손바닥만한 하늘 아래, 모든게 열악한 환경에서 두 부부만 사는 어려움은 없을까.
“한의학 박사인 지인에게 이 땅을 소개 받았어요. 2000년에 아내와 같이와서 보고 바로 결정했죠. 5월 말이었는데, 걸어들어는 길 주변이 온통 야생화밭이었어요.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꿈을 꾸는 것 같았어요. 그 모습을 보고 아내가 더 좋아했죠. 제 꿈이 ‘자연치유 산림한방휴양마을’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만한 터가 없겠더라고요. 그후 사업을 다 정리하고 들어온게 지난 2004년입니다. 당장 거처할 공간이 필요해서 폐가를 수리해 난로 하나 놓고 살았죠, 전기와 전화는 아랫마을에서 끌어다 쓰고, 식수는 산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먹으며 산나물을 채취하고, 집 주변에 고사리와 엄나무, 취나물을 재배했어요. 2007년에 새 집을 지을때까지 그렇게 살았는데,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어디에 살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때가 가장 행복한 법이다. 경기도 이천 시골 태생인 김주성 씨는 딱 산골체질이라고 했다. 시간이 나면 고사목 같은 나무를 주워다 조각을 했다. 겨울이면 붓글씨를 쓰고, 아내 문정숙 씨는 산나물이나 송이를 이용한 장아찌를 만들었다. 눈만 내리면 고립되는 일상이지만, 그 시간이 부부에게는 가장 여유로운 시간인 것이다.
“저는 5분 대기조에요. 저희 부부가 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제 남편은 뜬금없는 여행을 즐기거든요. 문득 떠오르는 곳이라든가 어떤 음식이 생각나면 5분 안에 출발하죠. 언젠가는 한 이틀 여행을 하고 왔더니 폭설이 내려 눈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길을 걸어 집으로 간 적도 있어요. 여행은 좋아하지만 그래도 이 골짜기가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성격 급한 남편 덕에 문정숙 씨는 5분 안에 짐을 꾸리는 실력을 갖게 됐단다. 사실 산골생활은 문정숙 씨가 더 좋아한다. 봄이면 지천으로 널린 산나물을 채취하고, 온갖 들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볼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도시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초자연적인 삶이라 할 수 있다. 가장 가난하고 변변한 농토도 없는 고산지대인 부탄이 세계에서 가장 삶의 질이 높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자연을 치유의 공간으로
2007년부터 부부는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이 넓은 골짜기를 부부만 독차지하기에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부부가 느끼고 행복했던 산골의 아름다움과 자연을 나누고 싶었다. 또 처음 3년 동안 무수입으로 생활하다 보니 장기적인 생활안정을 위해 시작한 것이 펜션이었다. 지금은 도시생활에 찌든 여행자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면서 나름 보람도 느끼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의 꿈이었던 ‘자연치유 산림한방휴양마을’ 계획도 서서히 진행 중이다. 지난 여름에는 황토방을 한 채 더 지었고, 자연 속에서 건강을 되찾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산책로를 만들었다. 주민들이 장보러 다니던 길을 찾아내고, 이웃 마을 마실다니던 길을 정비해 ‘달래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지난 2009년부터는 마을 이장 일도 보고 있다. 양양군 농산어촌관광대학과 농촌지도자리더쉽 교육과정을 수료하면서 마을 일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대대로 산촌마을인 하월천리는 산지가 95%에 달한다. 자연이 준 선물이라 할 수 있는 천혜의 관광자원과 지역특산품인 송이의 산지로 잘 개발만 하면 얼마든지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단순한 이장이 아니라 CEO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영농조합법인 달래촌’을 만들어 농가맛집을 주민들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주변에서 나는 산나물과 송이, 능이버섯 등을 이용한 약산채 밥상이 주 메뉴인데, 맛 뿐만이 아니라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처음 마을 이장을 맡고 어려움도 많았어요. 하지만 4개월이라는 단시간에 우수마을로 지정되고 입소문을 타면서 이제는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죠. 무엇보다 마을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보니 정작 펜션 일에 소홀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보람이 더 크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산골생활 적응기였던 초기 3년과 펜션을 운영했던 2년, 그리고 마을 이장 2년, 그렇게 7년이 흘렀다. 김주성 문정숙 부부는 이제 또 다시 변화의 시기에 있다. 개인소유인 느르리골을 자연치유의 공간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은 절반의 준비는 끝난 셈이다.
“언젠가 차가 고장난 남편을 만나기 위해 아랫마을까지 깜깜한 밤중에 혼자 걸어 간 적이 있어요. 동네 총각이 깜짝 놀라더군요. 무섭지 않았냐고요. 아마 도시의 뒷골목이었다면 무서웠겠죠. 그때 든 생각이 바로 ‘자연’이었어요. 자연은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라 편안한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존재니까요.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란 말도 있잖아요. 병들고 지친 사람들에게는 자연은 최고의 치유약인 것이죠.”
문정숙 씨의 말처럼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심신의 안정을 찾는다. 주말이면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아가듯 먼 길을 달려 자연 속으로 간다.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건강한 밥상이 별다른게 아니다. 오래전 우리 조상들이 먹던 그 음식이다. 먹을거리 귀하던 시절, 어쩔 수 없이 먹어야만 했던 그 음식들이 이제는 최고의 밥상으로 대접받고 있지 않은가.
바로, 자연이 답이다.
<글, 사진> 여행작가 눌산 http://www.nulsan.net
월간 산사랑 (http://sansarang.kfcm.or.kr)에 기고한 자료입니다.
'여행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이 좋아 산에 사네] 난치병 환자에서 덕유산 산꾼이 된 임용재 씨 (3) | 2012.05.14 |
---|---|
지리산에 흙집 짓고 된장 만드는 총각 구정제 (6) | 2012.04.06 |
[산이 좋아 산에 사네] 귀촌 1년 차 신혼부부의 꿈 (1) | 2011.12.06 |
간이역에서 아이들의 꿈동산으로 거듭난 '연산역' (0) | 2011.12.06 |
[산이 좋아 산에 사네] 거창 개금마을 김병주 김연호 부부 (2) | 2011.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