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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산이 좋아 산에 사네] 귀촌 1년 차 신혼부부의 꿈

by 눌산 2011.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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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물들이는 단풍처럼,

산골생활을 신혼의 단꿈으로 물들이고 있는 최우경 홍태경 부부

가을은 짧다.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불타던 산정은 이미 이파리를 떨군 나무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하지만 낮은 산들은 여전히 붉다. 울긋불긋 가을색이 물든 골짜기 마다에는 형형색색의 등산객들로 가득하다. 가을 흔적을 찾아보고 싶어 영동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내려섰다. 횡성 읍내를 지나 횡성천을 끼고 시골길을 달리자 은빛 억새가 소담스럽게도 피었다. 은행나무는 발밑에 노란 낙엽을 소복히 쌓아 놓았다.

신혼부부가 산골로 간 까닭은?

‘산이 좋아 산에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가을을 유독 좋아하거나 반대로 가을을 탄다는 것이다. 가을풍경에 반해 서울을 떠났다는 이들도 있다. 필자 또한 그리움에 몸서리치는 가을이지만, 길 위에 서면 이내 가을색에 빠져든다.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하궁리 야트막한 산아래 가을을 닮은 부부가 산다. 귀촌 1년 차 신혼부부다. 초보 티 팍팍나는 신혼부부지만 그들의 꿈은 완전한 농군이다. 최우경(41) 홍태경(38) 부부가 그들이다.

약속이 있어 두 시간만 시간을 낼 수 있다는 부부를 만나기 위해 새벽길을 달렸다. 희뿌연 안개 속에 드러난 부부의 집은 산 아래 맨 끝집이었다. 활 처럼 둥그렇게 휜 산세가 편안해 보인다. 하궁리(下弓里)란 마을 지명 또한 이 산세 때문에 붙여졌다고 하니 보는 눈은 다 똑 같은 모양이다. 아늑한 골짜기여서 그런지 단풍이 아직 한창이다. 맞은편 산자락의 자작나무 숲과 활엽수림의 은은한 가을빛이 아름답다. 이런 풍경을 매일 아침 만나고 사는 부부의 생활이 궁금했다. 아직은 산골생활 초보라고는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들의 용기와 결단,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자.

결혼과 동시에 이 집에 들어 온 부부는 아직 자신의 집이 없다. 2년 계약으로 빈집에 전세로 산다. 마당이 따로 없는 집 주변에는 빙둘러 배추와 무우가 심어져있다. 울타리 역활을 하는 구기자 열매는 빨갛게 익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고, 추수를 막 끝낸 집 앞 무논에서는 겨울 준비가 한창이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신혼부부의 깨소금 냄새가 진동을 한다. 홍태경 씨가 구수한 녹차를 내 놓으며 한마디한다.

“작년에도 직접 농사지어서 김장을 했어요. 저는 너무 맛있게 잘 먹었는데, 남편은 너무 억세서 맛이 없다고 해요.”

그동안 도시입맛에 길들여져 있었으니 그도 그럴 듯 하다. 강원도 배추 특유의 억센 맛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서울토박이인 홍태경 씨가 더 농군 티가 난다. 부부는 인드라망 귀농학교에서 처음 만났는데, 홍태경 씨가 최우경 씨보다 3기 선배다. 더구나 귀농학교에서 석사과정으로 불리는 1년 과정의 현장귀농학교 과정까지 마쳤다. 300평 농사를 손수 지었던 것. 그에 반해 최우경 씨는 이론교육과정만 마쳤다. 하지만 최우경 씨의 꿈은 전업농이다. 아직은 준비단계라 할 수 있는데, 하나하나 배워나갈 계획이다.

최우경 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산골이 왜 좋아요?"

“도시는 답답하잖아요. 사방이 콘크리트 벽에 갇혀 사는 꼴이죠. 산골에서는 맘껏 제 꿈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또 힘들지만 일한 만큼 보람도 있잖아요. 무엇보다 이런 산골생활은 단순하잖아요. 쫒기듯 살아가는 도시와는 정반대죠. 그런 의미에서 산골생활은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도 있고, 내 방식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농사는 경험이 우선이라는데...”

“경상북도 영주 시골태생이지만 농사 경험은 없어요. 그래서 귀농학교를 다녔던 것이고, 아직은 젊기에, 또 인생의 동반자가 있기에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해요.”

농사는 2인 1조다.

최우경 씨는 아직 직장을 다닌다. 원주에 있는 지적장애인재활시설의 생활교사로 일한다.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산골로 들어가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놨던 것이다. 막연한 준비지만,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이라고 했다. 당분간은 직장 일을 병행하면서 농사공부를 더 할 예정이다. 이미 산골생활을 시작했으니 서두를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하다보면 농사에 대한 자신감이 붙을 것이다. 먼저 자리잡은 귀농학교 선배들의 도움과 교류도 큰 힘이 된다. 귀농학교에서 배웠던 생태적 삶, 자립적 삶, 공동체적 삶의 실현이 목표라고 했다.

농사는 텃밭 수준에 불과하지만, 경험이 더 많은 홍태경 씨 담당이다. 더구나 횡성 생활 4년 차인 그는 일대 지인들과의 교류도 이어가고 있다. 4년 전 처음 횡성에 내려와 처녀 셋이서 동거를 했다. 모두 귀농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로 지금은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한다. 취재를 간 날도 지인들과 함께 차 공부하러 간다고 했다. 산골에서는 흔한 꽃도 좋은 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원강사 출신인 홍태경 씨는 그때만해도 결혼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라도 산골생활를 꿈꿨다고 한다. 산골로 내려간다고 했을때 주변 사람들은 부러움 반 걱정 반 눈길을 보냈다. 결혼도 안한 여자 혼자 어떻게 살 수 있겠냐고. 하지만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그는 횡성으로 내려왔다. 귀농학교에서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을 만나고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은 최우경 씨를 만나고부터인 셈이다. 농사가 힘들다는 것은 알았지만, 더구나 혼자서는 무리라는 것을 알때 쯤 최우경 씨를 만났다.

“남편이 그러더라구요. 농사는 2인 1조다.라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잖아요. 꼭 그것만은 아니지만 농사가 꿈인 남자라면 같은 길을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결혼 1년 차 신혼부부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 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부부는 아주 잘 어울린다. 부부는 닮아 간다던가. 이제 그들은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귀농이든 귀촌이든 서울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젊은 나이에 산골에 들어와 농사 짓고 산다면 아마도 도시에서의 적응 실패나 낙오자라고 여기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부부의 생각은 달랐다. 또 다른 삶을 위한 도전이라고 했다. 생각을 바꾸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는 것. 말 처럼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생각 하나만 바꾸면 간단한 문제라는 생각이다. 모든게 난관이고 어려움이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과 함께한다면 해결의 실마리도 풀리게 되는 것이다.

부부는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한 이들을 위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도시에 있는 친구들은 걱정하지만 저희들은 오히려 도시인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실의 문제는 많아도 가장 중요한 나 다운 삶이 있잖아요. 산골생활은 모든 일이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거든요. 산골에 내려온 순간 그동안 걱정하고 결단을 하지 못하게 했던, 주류에서 벗어나는 두려움과 생활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은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되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이 주는 힘이 아닐까. 아침에 만나는 풍경과 저녁에 만나는 풍경이 다르듯이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최우경 씨 말 처럼 도시든 산골이든 삶의 질과는 무관한 것이다.

자연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더욱 행복하다는 부부를 먼저 보내고 홀로 마을 숲길을 걸었다. 고요한 아침이다. 바람과 눈부신 가을색이 어우러진, 산골에서만 맛볼 수 있는 호사가 아닐 수 없다.

<글, 사진> 여행작가 눌산 http://nulsan.net/

월간 산사랑  http://sansarang.kfc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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