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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여행

[전라남도 곡성] 섬진강, 그리고 보성강 건너 태안사

by 눌산 2013. 1. 11.












압록국민학교를 다녔다. 압록강이 아니고,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에 있었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학교다. 학교 바로 옆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전라선 철도와 17번 국도가 지나는, 요즘 꽤 잘 나가는 동네다. 섬진강 기차마을 때문인데, 기차든, 자동차든 그냥 타고 지나가기만 해도 근사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때는 몰랐다. 내 고향이 그렇게 멋진 곳인 줄은.

국민학교 4학년 때 전기가 들어오고 도로가 포장되었다. 근동에서는 큰 마을로, 지금으로 치자면 시내 소리 들을 만 한 곳이 아닌가 싶다. 더구나 전라선 기차역이 있어 서울도 가고, 여수도 가고 그랬다. 요즘 같으면 교통의 요충지 소리도 들을 만 했다. 

간만에 고향 나들이를 했다. 섬진강과 보성강을 건너 태안사까지. 아, 태안사는 내가 태어 난 곳이다. 진짜 고향이라 해야 되나? 태어나서 8살까지 살았던, 하지만, 가장 많은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17번 국도를 타고 곡성기차마을을 지나면, 증기기관차의 종점인 가정역이다. 자동차로 이동한다면, 가정역 바로 못미쳐 강을 건너면 좀 더 여유로운 길을 만난다. 17번 국도 건너편 길이다.





가정역이 있는 가정마을이다. 겨울이라, 더구나 평일이라 한가롭다. 따뜻한 봄날이라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여름에는 말 할 것도 없고, 겨울에도 주말에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강을 따라 계속 내려가면 압록마을이다. 맞은편 넓은 공터가 압록국민학교 터로 지금은 캠핑트레일러가 운동장을 차지하고있다. 전교생 600명이 넘던 학교가 분교로 전락하더니, 어느날 폐교되었다. 마을 한가운데 모텔이 들어설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내가 다닌 학교가 사라졌을 때는 고향집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압록은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다. 어릴적에는 섬진강을 순자강이라 불렀다. 유순하다는 의미로, 압록을 지나면서 강은 넓어지고 유속은 좀 더 빠르게 흐른다.





섬진강을 뒤로 하고 보성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태안사 가는 길이다. 멀리 보이는 다리는 내 어릴적에도 있었던 흔적이다. 물론 지금은 높고 넓은 새 다리가 놓여 있다.





섬진강에 비해 보성강은 더 느리게 흐르는 강이다. 폭은 더 좁고, 수초나 모래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촌티 팍팍 나는 강이다. 봄이면 벚나무 가로수 길이 멋지다. 요즘들어 부쩍 늘어난 산수유와 매화꽃이 만개하면, 저 아래 광양 매화마을 못지 않은 풍경을 자랑한다.

저 작은 다리에 대한 기억이 하나 있다. 장맛철이었는지 다리가 넘쳐 아버지 등에 업혀 건넜다. 여러번 그랬던 것 같다. 무서워 건너지 않겠다고 때를 쓰던 기억도 있으니 말이다. 8살 이전의 기억이지만, 가슴 속 깊이 가장 뚜렷히 남아 있는 한 장의 사진이다.





태안사 가는 길이다. 매표소에서 일주문 까지는 약 2km. 걸어서 30분이면 족하다. 여전히 비포장이지만 승용차도 다니는 길이다. 하지만 걸었다. 눈길이 무서워서.





이렇게 멋진 절집 가는 숲길이 또 있을까 싶다. 여전히 비포장 길에, 언제나 물이 촬촬 흐르는 계곡을 끼고 걷는 길이다.

사진은 능파각이다. 어릴적에는 수박다리라고 불렀다. 궁금해서 알아봤지만, 그 이유를 속시원히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능파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왼쪽 길을 택한다. 차가 다니는 길이라 그럴게다. 하지만 오른쪽 길을 택해야 일주문을 통하게 된다. 짧지만, 전나무 숲길도 지난다.





속 터지는 얘기 하나 해야겠다. 태안사 대웅전 뒷편에 있는 배알문 얘긴데,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이란 긴 이름의 동리산 자락에 구산선문을 일으킨 혜철스님의 부도탑이 있는 곳이다. 누구라도 머리를 조아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낮은 문이었다. 하지만 이 배알문은 새롭게 단장하면서 저 모양으로 만들어 버린것이다. 무슨 얘기냐면 본래의 낮은 문을 키 1미터 78센티의 나도 그냥 들어갈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러고는 말들이 많았는지 사진에 보이는 붉은색 부분, 즉 합판으로 막아 놓은 것이다. 덕분에 여전히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다.

아래는 복원 전 사진이다.
 




이 사진만 보면 헐~ 소리 절로 나온다.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부터 절마당은 놀이터였다. 외할머니 집이 태안사 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고, 공양간을 내 집 드나들듯 했다. 두 팔을 벌려서도 다 안을 수 없을 만큼 큰 누룽지를 안고 집으로 가곤했다. 배알문에 속은 터지지만, 다행인 것은 절집 가는 길이 여전히 먼지 폴폴나는 비포장이란 것이다. 문화재 관람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자격이 있지만, 꼬박꼬박 내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잊혀지는 것은 두려움이다.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은 한 장의 사진처럼 태안사는 내 가슴 속 깊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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