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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여행

[전라남도 완도] 바람이 만든 아홉 계단. 완도 구계등(九階嶝)

by 눌산 201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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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를 다녀왔습니다. 육지의 최남단에 자리한 완도는 전국 어디를 기준하더라도 참 먼 곳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 또한 같은 남도지만 세 시간 이상 달려야 하는 먼 거립니다. 완도는 드라마 '해신' 덕분에 뜨긴 했지만. 두루두루 명소가 참 많은 곳입니다.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신지도와의 사이에 다리가 놓였고. 보길도나 청산도 같은 섬여행 길에 들고 나는 길목으로만 스쳐지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섬입니다.


완도 정도리의 구계등(九階嶝)입니다. 수 만년 동안 바람과 파도에 씻기도 깎인 크고 작은 돌들은 주로 검푸른 빛을 띄고 있습니다. 덕분에 청환석(靑丸石)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답니다.










구계등(九階嶝)은 아홉개의 고랑과 언덕을 이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 낸 이 걸작은 뭍에 드러난 서너 계단 외에 물 속에도 그런 모습이라는 얘기지요. 이런 갯돌밭은 보길도의 예송리나 거제의 몽돌해변, 여수의 무술목 등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계등 만큼 곱고 크기 또한 다양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구계등에 쌓인 몽돌의 깊이는 짐작조차 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구계등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는 맑은 날보단 궂은 날이 제격입니다.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크고 작은 몽돌들이 뒤섞여 있다보니 서로 맞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소리가 '촤르르르르...' 하고 울려 퍼지며 우뢰와 같은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폭풍우 몰아치는 어느 밤이라면. 아마 상상이 가실 겁니다. 여름에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저는 폭풍우 몰아치는 궂은 날 잡아 가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바람 한점없는 봄날에 그런 소리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 순간 구계등의 바다는 너무나 고요합니다.



















폭 200m 길이 800m의 구계등 해안으로는 멋들어진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수십종의 상록수림으로 숲은 한여름에도 으스스 할 만큼 우거져 있습니다. 사이사이 산책길이 만들어져 있고. 잠시 더위를 피하기 좋은 곳입니다.





































삶과 죽음을 인연이라는 화두로 풀어 낸 윤대녕의 소설 <천지간>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이 구계등에 대한 환상을 갖고 계실겁니다. 아마. 책을 덮는 순간 완도로 달려가신 분들도 계시겠지요. 한낮 사진이라 구계등에 대한 환상을 갖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정도리 바닷가엔 모래가 한 점도 없어요. 청환석(靑丸石)이라고 해서 푸른 돌들이 해안을 따라 죽 깔려 있죠. 해안선이라고 해봐야 기껏 700미터밖엔 안 되지만 돌밭이 바닷속으로 아홉 고랑을 이뤄 내려가 있다고 하니 장관은 장관인 셈이죠. 그래서 구계등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

눈이 그치고 난 뒤의 해변은 파도 소리마저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안으로 활처럼 휘어져 있는 해안으로 내려갔다. 수박만한 청환석들은 아래로 내려갈 수록 참외만하게, 주먹만하게 작아지더니 물밑녁에 이르자 겨우 달걀만해졌다. 무릎 아래로 달빛에 부서진 파도가 은빛 거품을 물고 달겨들고 있었다. 언뜻 뒷전에서 바람이 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방풍림이 달빛 아래 떨고 있는 게 보였다. 얼마 만에 쳐다본 밤하늘인지도 모르지만, 사금 광주리를 엎어 놓은 듯이 그야말로 무진장한 별들이 머리 위에 가득 내려와 있었다.

/ 윤대녕 <천지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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