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의 자연과 꿀벌에 푹 빠진, 자칭 꿀벌생태 전문가
/ 전북 무주군 적상면 황종현·김세윤 부부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멀리 떨어진 내륙에 위치한 무주는 산지가 84%를 차지하는 산악지역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 만해도 열 곳이 넘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금강이 지나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그런 이유로 무주는 관광도시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관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주가 갖고 있는 자연환경이다. 자연환경이야말로 세대가 변해도 지속적으로 무주의 중심 역할을 하는 무한한 자원이라 할 수 있다. 무주에서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반해 터전을 옮겨 온 이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적상면 괴목리 하조마을의 귀촌 1년 차인 황종현(41)·김세윤(39) 부부도 그렇다.
무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반했다
“처음 무주를 와 보고 ‘여기다!’ 싶더라고요. 하조마을에 정착하기 전, 무주에 딱 두 번 왔는데 아름다운 무주의 자연에 완전 반했죠.”
자칭 꿀벌생태전문가 황종현 씨는 서울에 있을 때 활동하던 독서모임이 무주에서 캠프를 열어 처음으로 무주를 방문하게 되었다 한다. 그 때, 고향인 전라남도 함평과는 전혀 다른 지형을 갖고 있는 무주의 산과 골짜기에 반해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도 첫인상이 중요하듯 자연도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황종현 씨는 서울에서 살 때 목수였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어 생계의 위협을 받게 된다. 그러다 모임에서 만난 김세윤 씨와 결혼하면서 아이까지 갖게 되자 마음이 급해졌다. 총각 때만 해도 적당히 벌어 욕심 없이 살자는 주의였지만, 결혼과 아이는 그의 삶을 바꿔 놓을 수밖에 없었다. 또 직업의 특성상 지방을 자주 다녀야 하기 때문에 집을 오래 비우는 것도 문제였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경북 의성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우연치 않게 꿀벌전문가와 만나게 되었는데 그 만남으로 인해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의성에서 사과농사를 했는데, 윗마을에 사는 벌치는 시각장애인 어르신을 알게 되었죠. 앞이 안 보이는 분이 벌을 관리하고 꿀을 채취하는 모습이 신기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배우려고 안 한다면서 너무도 자세히 알려주신 덕분에 쉽게 접할 수 있었어요. 그런 훌륭한 분을 만나게 된 것이 제게는 행운이었죠.”
의성에서 그렇게 큰 스승을 만나 꿀벌의 생태를 배웠다. 배운 것을 복습하는 의미에서 매일매일 일지를 작성했고 하루하루 꿀벌의 생태를 관찰하는 생활을 했다. 짧게는 25일에서 길게는 6개월을 살다 죽는 벌의 생태를 이해하는 데만 3년이 걸렸다. 꿀벌은 질병이나 분봉, 추위 등에 워낙 예민하기 때문에 아차하면 일년 농사를 망치는 경우도 있다. 또 살아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단시일에 배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여전히 배우는 입장에서 벌을 친다고 했다.
“의성에서 그렇게 2년 정도 생활했어요. 사과밭을 임대해서 농사를 지었는데, 부친이 암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라 어머니 홀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그래서 다시 고향 함평으로 갔어요. 거기서 역시 벌을 치면서 부모님의 농사를 도와주다 아버님이 지난해 돌아가시면서 언제나 마음속에 염두에 두었던 무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신이 내린 선물, 벌꿀 따는 황반장
무주생활 1년 째이만 그는 무주에 대한 애정이 많아서 그런지 이미 ‘무주사람‘이었다. 지역행사가 있으면 빠짐없이 참석한다. 자신의 꿀을 판매하고 무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도시소비자에게 소개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만약에 돈이 많았다면 벌꿀전문가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그것은 오랜 시간 인내를 갖고 벌의 생태를 이해해야 하는데, 돈에 대한 욕심을 가졌다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이 일을 하기 힘들거든요. 물론 꿀벌을 키워 먹고 살고는 있지만 생명이기 때문에 무한한 애정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는 꿀벌과 생활하면서 사람 사는 세상을 돌아보기도 한다. 벌은 각종 과일나무나 농작물, 꽃들로부터 자기에게 필요한 양식을 얻는다. 대신 몸에 꽃가루를 묻혀 열매를 맺도록 도와준다. 그는 꿀벌과 자연과의 관계가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순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워나간다는 것이다.
“벌들을 관찰하고 있으면 참 재미있어요. 말벌이 칩입하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날아가 목숨을 바칩니다. 자기 집을 지키기 위해서죠. 또한 벌은 온도와 먹이, 물이 꼭 필요한데 2월 육아기 때 어린 벌에게 먹일 물을 구하기 위해 벌통에서 나오다 추위와 바람에 얼어 죽어요. 한 마리가 나와 죽으면 그 다음 녀석이 또 나옵니다. 그렇게 죽을 줄 알면서도 어린 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죠. 사람이 볼 때는 수만 마리의 다른 개체로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개체라 할 수 있어요. 이러니 평생 꿀벌과 살아오신 분들을 보면 신선이 따로 없죠.”
자연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그의 직업 특성상 절기는 가장 중요하다. 입춘을 지나면서 벌이 활동하는데, 알을 낳고 산란활동을 하게 되면 보온재를 넣어주고 세밀한 관리에 들어간다. 특히 질병은 애벌레 때에 가장 많이 발생하기에 이 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꿀 채취는 매년 5월 10일을 전후해 아카시아 꽃의 개화를 시작으로 야생화와 밤꽃이 피는 곳을 찾아 장소 이동을 한다. 주로 무주를 근거지로 삼고는 있지만, 때론 처가가 있는 청주 인근까지 이동하기도 한다. 벌통을 그냥 놔두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그리하기에 늘 벌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의 소중함과 순리를 배운다.
그가 채취하는 꿀은 아카시아 꿀이 80%를 차지하고, 나머지 20%는 야생화와 밤꿀이다. 올해는 반딧불축제와 머루축제를 통해 직판을 하였다. 입소문이 타기 시작나면서 얼마 전에는 서울에 있는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기회도 가졌다. 특히 그의 벌꿀에는 자신의 얼굴 사진이 들어가 있는데, 그건 ‘나를 믿고 먹어도 된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상표는 ‘황반장 벌꿀’로 정했다. 오래전부터 지인들이 자신을 황반장으로 불러 그리하였다. 이러한 자신감이 소비자에게 황반장 벌꿀에 대한 신뢰를 심어줬다고 그는 믿고 있다.
“무주는 저에게 기회의 땅입니다. 그간 어려움도 많았지만 무주에 오면서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거든요. 무주에 대한 애정이 제게 이런 기회를 준 것 같아요.”
그렇다.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하는 일도 즐겁다. 특히 좋은 먹을거리는 생산자의 마음과 환경이 좌우한다. 그의 하루가 꿀벌과 시작해 꿀벌로 끝나는 것도 내 아이의 먹을거리를 생산한다는 각오에서 출발했다. 꿀벌에 대한 애정이 곧 ‘황반장 벌꿀’이 인기리에 팔려나가는 이유가 아닐까.
[글,사진] 여행작가 눌산 http://www.nulsan.net
반농사 귀농·귀촌 소식지 10월 호 기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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