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무주 원괴목 마을의 새댁과 새내기 이장님
/ 김용신·이현승 부부
적상산은 둘레를 빙 둘러 어디 하나 빠지는데 없는, 참 잘 생긴 산이다. 사실 무주하면 덕유산이 먼저 떠오르지만 적상산에 한번이라도 올라 본 사람이라면 그 찬사를 아끼지 않을 만큼 속살이 깊다. 예부터 산성이 있어 천혜의 요새로 알려져 있는 적상산은 사방이 층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덕분에 가을 단풍뿐만이 아니라 사철 제각각의 멋을 뽐내고 있어 언제나 여행자들로 가득하다. 또한 예사롭지 않은 외모와 호탕한 산세만큼이나 적상산 골골마다 얘깃거리도 넘쳐난다.
여보~ 내 고향으로 가자
무주의 진산답게 적상산 아래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예로부터 고추가 잘 되기로 유명한 적상면 괴목리에 정착한 김용신(43) 이현승(44) 부부를 만나고 왔다.
김용신 씨와 이현승 씨의 고추밭이 있는 마을 뒤 언덕에 올랐다. 수확을 앞두고 있는 고추가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발갛게 익은 고추가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해보기는 처음이다. 고추밭 너머로는 적상산의 육중한 산세가 코앞에 펼쳐진다. “전망 하나는 끝내주네요“라고 했더니 김용신 씨는 ”일하다 힘들 때 허리를 펴고 서면 보이는 저 산이 있어 힘이 난답니다.“했다. 고추밭 끝에 작은 원두막에 앉아 부부는 그동안의 괴목리 생활의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부부가 귀농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남편인 이현승 씨 생각이었다. 경기도 파주에서 맞벌이생활을 하던 부부는 이현승 씨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부터다. 적상면의 상가리가 고향인 이현승 씨는 도시생활에 지쳐 있을 때쯤 몸에 이상이 왔다.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내 김용신 씨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다 정리하고 함께 고향에 내려가 살자고. 서울토박이인 김용신 씨는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의 건강이 먼저라는 생각에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고향행을 결심한 지 3년만인 지난 2010년 옷가방 하나 달랑 들고 무조건 무주로 왔다. 거주할 집도 구하기 전이었다. 읍내 달방을 얻어 생활하며 정착 할 곳을 찾아 다녔다. 하, 이런! 집도 구하지 않고 무작정 내려왔다는 부부의 말이 황당하기 그지없다. 보통은 집이나 땅을 먼저 구하고 내려오는 게 순리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현승 씨의 말을 듣자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향으로 내려가자고 3년 동안 아내를 설득했죠. 그러다 반허락을 받고나니 얼마나 신났겠어요. 그래서 무작정 내려온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건강이 여기로 오게 만들었어요. 여기 오기 전에는 10분도 걸을 수 없을 만큼 무릎 통증이 심했는데, 이곳에 와서 매일매일 산책을 하니 점점 나아지더라고요. 이제는 등산이나 다름없는 고추밭을 오르내리는 일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죠.”
아무 대책 없는 고향 행이었지만 부부에게는 새로운 기회였다. 백지상태에서 남은 부부인생의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을 하고 살까? 그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조급한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하나부터 배워서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 백지에 그린 첫 번째 그림은 부부가 거처할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괴목리 원괴목 마을에 터를 정하고, 두 번째 그린 그림은 괴목리의 주 작물인 고추와 옥수수 농사였다. 농사의 ‘농’ 자도 모르던 부부에게 마을 주민들이 권한 작물이 고추와 옥수수였던 것. 부부는 평생 이 마을에서 살아온 어르신들이 스승이라는 생각에 무조건 따랐다. 처음부터 그리 할 생각이었다. 결과론 적으로 보자면 그 생각이 옳았다. 무엇보다 부부는 자신들의 선택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부부에게 수입이 얼마나 되냐고 묻지는 않았다. 수입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의 생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을 어르신들이 스승이다
첫해에 5백주부터 시작했던 고추농사는 올해 3천여 평에 2만 5천주를 심었다. 건고추 수확량으로 따지면 3천5백 근 정도다. 판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도시의 지인들을 통해 전량 판매하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도시생활을 할 때에 비해 5~60% 정도 수입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마을 어르신들이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심었어요. 200평에 배추, 마늘, 감자, 옥수수, 고구마, 콩, 들깨, 참깨, 야콘 등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었죠. 뭘 알아야 선택을 하고 말고 아니겠어요?”
처음에는 물심부름부터 했다. 어르신들이 밭에서 일을 하면 기웃거리기도 하고, 잔심부름을 하면서 농사일을 배워나갔다. 마을 행사가 있을 때면 팔을 걷어붙였다. 김용신 씨는 음식 만드는 일을 거들었고, 이현승 씨는 차량 지원을 했다. 그러면서 “저 사람들이 왜 이곳에 왔을까?”하는 따가운 시선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농촌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가 주민들과의 관계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저희 부부는 나름 노력을 많이 했죠. 솔직히 예쁘게 보이려고 한 거죠. 한 2년 정도 지나니까 어르신들이 반쯤 마음의 문을 열더라고요.”
그렇다. 부부는 이 마을 주민이 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인사하고, 마을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봄이면 밭에서 일하는 어르신 찾아다니며 배우고, 그렇게 산 지 3년 만에 이현승 씨는 원괴목 마을의 이장이 됐다. 그것은 이 마을 주민으로 인정받았다는 얘기도 된다.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저희 부부처럼 막무가내식 귀농은 아니고 많은 준비를 하고 시작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는 거 같아요. 그것은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입니다. 굳이 잘 보일 필요는 없지만 아무리 잘해도 칠십 평생 땅만 파고 살아 온 어르신들을 따라 잡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먼저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낮은 자세로 배우고 함께 하려는 마음 말입니다.”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부부는 농한기에도 쉬지 않는다. 가까운 리조트 주변의 펜션과 스키샵에서 간간히 들어오는 일을 한다. 3년 만에 마을 이장이 된 것도 다 열심히 사는 부부의 모습을 지켜 본 주민들이 마을 살림살이를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더불어 막중한 책임감도 느낀다.
부부는 이제 세 번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역시 백지상태다. 처음과 다른 점은 나름 농사꾼 반열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 얘기는 막막했던 처음과는 달리 무엇이든 부부 생각에 따라 새로운 그림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부부가 그리는 그림이 곧바로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사진> 여행작가 눌산 http://www.nulsan.net
반농사 귀농·귀촌 소식지 10월 호 기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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