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유토피아 십승지(十勝地) 마을 철목리에서 벌한마을까지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鄭鑑錄)에 따르면 한국판 유토피아라 할 수 있는 십승지(十勝地)에 대한 기록이 전해져 온다. 정감록의 '정'은 정씨를, '감'은 천도(天道)와 풍수지리를, '록'은 계시록 같은 예언서를 뜻한다. 십승지란 일종의 ‘피난처’로, ‘숨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땅’을 말한다. 전쟁이 나도 안전한 곳, 흉년이 들지 않는 곳, 전염병이 들어오지 못하는 곳으로 풍기 금계촌, 예천 금당실, 봉화 춘양, 속리산 우복동, 개령의 용궁. 합천 가야산 만수동, 공주의 유구-마곡, 남원 운봉, 부안 호암아래 변산, 태백산, 영월 연하리, 그리고 무주 무풍이 기록으로 전해는 곳이다.
승지마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설천면 벌한마을을 이어주는 '사선암 옛길'을 걸었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 '라제통문'을 기준으로 신라 땅 철목리에서 백제 땅 벌한마을로 넘어가는 길이 '사선암 옛길'이다.
사선암 옛길은 무풍면 철목리 마을 끝에서 시작한다. 승지체험마을에서 세워 놓은 표지판이 사선암까지 이어진다.
옛 친구와 함께 온 대구 트레킹팀과 함께 했다. 체험마을인 무풍 승지마을은 무풍편의 8개 법정리 및 17개 행정리, 자연마을 53개중 3개 법정리와 7개 행정리, 자연마을16개로 구성되어 있는 승지권역을 말한다. 승지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조상들이 찾아다녔던 십승지의 의미를 되살려 농촌다움(Rurality)의 유지·보전과 환경정비를 통해 쾌적한 농촌공간을 조성하고 주민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주5일제 시행과 소득증대로 도시민들에게 건전한 여가생활과 전원생활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마을을 막 벗어나면 사과밭이다. 귀여운 녀석들을 만나 잠시 쉬어 간다.
사과밭을 지나면 옛길 본연의 모습을 만난다. 골이 깊어 숲은 서늘하다.
'눈의 나라' 무주에서도 요즘 눈 보기가 쉽지 않은데, 숲 속은 눈밭이다. 큰 눈이 내리지 않아 대부분 녹아버렸지만, 깊은 숲에는 다져진 눈이 적당히 쌓여 있다. 역시 겨울트레킹의 제 맛은 눈이 있어야 한다.
고요한 숲을 천천히 걷는다. 뽀드득 뽀드득, 눈길을 걷는다.
옛길의 특징은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이 넘나들었던 고갯길 중간에는 이런 쉬어가기 좋은 큰 나무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산 아래에서는 봄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산중의 봄은 멀게 만 느껴진다.
비탈진 산길을 올라서면 임도를 만난다. 잠시, 약 200m 거리에서 길은 다시 숲으로 접어 든다.
멀리 사선암이 보인다. 저 V자 고개를 넘어서면 벌한마을이다.
길은 사람의 발자국을 먹고 산다. 묵은 길은, 걷는 느낌이 다르다. 오랜 시간 사람의 발자국에 의해 다져진 길을 걸으면 포근한 촉감이 발바닥에 그대로 전해져 온다.
천 년 옛길이지만, 한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았던 길이다. 잿마루에 닿기 직전에는 그 흔적조차 희미해져버렸다.
사선암. 네 명의 신선이 노닐던 곳이라는 사선암에는 신라 화랑과 관련된 이야기도 전해져온다. 연유야 어찌되었든 신선이 노닐던 사선암 바위 위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다. 사선암에서 잿마루를 넘어서면 철목리로 이어진다.
벌한마을. 추위를 물리친다는 뜻을 가진 벌한(伐寒)마을은 성산 배 씨 집성촌이다. 해발 550m 고지대에 북쪽으로 골문이 열려 있어 매서운 겨울 북서풍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형이 사람이 살기에는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400여 년 전에 이곳에 터를 잡은 옛사람들의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는 것이 거칠봉(居七峰 1177.6m)과 사선암(四仙岩)이다. 마을 뒤로 감싸 안은 듯 병풍을 둘러친 거칠봉은 마을을 향해 차례로 키를 낮추며 정면으로 트인 골바람을 막아준다. 참으로 독특한 지형이 아닐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이 아닌 북향 골짜기지만 거칠봉의 일곱 신선과 사선암의 네 신선 덕분에 수백 년 평안히 살아왔다고 믿는다.
벌한마을에서 구천동계곡과 만나는 구산마을까지는 마을 길이 있다. 하지만 덕유산국립공원에서 조성한 옛길인 '신선길'을 따라 내려올 수도 있다. [Tip] 전북 무주군 무풍면 철목길 61
무풍승지마을 방문자 센터가 들목이다. 사선암까지만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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