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는 동면을 한다. 사람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긴 겨울 축적 된 기운을 모아 새순을 돋고, 꽃을 피운다. 사람은, 가슴을 열고, 오감으로 대지의 힘찬 기운을 받아들인다. 문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구가 넘쳐나고, 움츠린 어깨와 굳은 몸에 생기가 돈다.
자연과 가장 가까이 마주하는 방법으로 걷기만큼 좋은 수단이 또 있을까. '걷기'의 의미는 죽자 사자 이를 악물고 걷는 고행의 길과는 다르다. 굳이 거리와 시간에 의미를 부여할 이유도 없다. 보고 싶은 만큼, 걷고 싶은 만큼만 걸으며 자연과 호흡하면 되는 것이다.
오래 묵을수록 좋은 것들이 많다. 길도 그렇다. 사람의 발자국을 먹고 자란 옛길은 발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감촉이 다르다. 길에서 향기가 난다. 따뜻한 봄날 걷고 싶은 길, 여덟 곳이다.
1. 무주 금강(錦江) 마실길, 잠두마을 옛길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무주 나들목 직전에 금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다리 건너 산의 모양을 자세히 보면 누에머리가 연상되는 좌우로 볼록한 봉우리가 있다. 바로 그 아래 마을이 잠두마을이다. 잠두(蠶頭)는 산의 모양이 누에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옛길은 강 건너 약 2.5km 구간만이 남아 있다. 무주에서 금산으로 향하는 37번 국도가 확포장 되면서 방치된 길이라고 보면 되는데, 짧지만 벚나무 가로수가 있어 4월 중순이면 꽃길이 된다.
2. 구례 누룩실재 옛길
누룩실재는 섬진강 변 유곡마을에서 지리산 아래 구례 사동마을로 넘어가는 옛길이다. 유곡마을 사람들이 구례 장보러 넘나들던 길. 사동마을에서 누룩실재까지는 3km, 다시 유곡의 상유마을까지는 3.4km. 총 6.4km로 두어 시간 거리다. 상유마을 아래 하유마을 섬진강 변으로 내려 선 다면 3시간 정도 소요된다.
3. 금산 보곡마을, 산벚꽃 길
'산꽃나라 산꽃여행'이란 주제로 ‘산벚꽃 축제’가 열린다. 축제라기보다는 걷기 좋은 길을 한없이 걷는 여행이다. 산벚꽃 흐드러진 산길을 새소리 바람소리에 취해 걷다보면 어느새 나도 '봄'이 된다. 총 세 코스가 있다. 1,2 코스는 두 시간 내외, 3코스는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 하지만 누구랑 걷느냐에 따라 시간은 달라진다. 시간을 잰다는 것은 무의미하니까.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금산IC가 들목입니다. 영동방향 -> 제원 면소재지에서 좌회전 -> 군북 면소재지에서 우회전 -> 산안리 보곡마을 (약 20분 소요)
4. '천상의 화원' 무주 적상산 하늘길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은 사람이 있듯이, 길에도 그런 곳이 있다. 그 길에는 이른 봄 복수초를 시작으로 현호색, 바람꽃, 피나물이 순서대로 피어난다.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적상산은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 따로 없다. 그 주인공은 바로 피나물. 피나물이 거대한 군락을 이룬 적상산 산정은 온통 노랑 일색이 된다. 양귀비과의 식물로 연한 줄기나 잎을 꺾으면 피같은 적황색 유액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화려한 꽃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무주 적상면 서창마을에서 적상산 안국사까지는 3.8km로 그 중간에 피나물 군락이 있다. 왕복 4시간 소요. 가장 쉽게 오르는 방법은 자동차로 안국사까지 올라간 다음 향로봉 능선을 타면 된다. 왕복 1시간 내외.
5. 청산도 슬로길
청산도는 봄이 좋다. 유채꽃이 만발하고, 살갗을 간지르는 포근한 봄바람이 좋은 곳이다. 청산도는 어디를 가도 유채꽃밭이 펼쳐진다. 그 뒤로 울긋불긋한 사람의 마을이 있고, 앞마당 같은 바다가 있다.
섬이라고 얕보면 큰 코 다친다. 42.195km 11개 코스가 있다. 모두 걷는다면, 아마도 2박 3일은 걸리지 않을까. 이틀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걷기는 느림에 묘미가 있다. 그래서 슬로길 아니던가.
6. 고창 청보리밭
참 이국적인 풍경이다. 보리밭이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설렁설렁 걷기 좋은 보리밭 사잇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촉촉한 황톳길이라 발바닥도 호강하는 길이다. 이런 길이라면 종일 걸어도 좋을 것이다.
7. 섬진강 기차마을 강 건너 길
곡성 기차마을 강 건너 길이다. 자전거길이란 표지판이 있지만, 걷기에 더 좋은 길이다. 증기기관차가 운행하는 곡성역에서 가정역까지 구간으로 곡성역에서 가정역까지 걸어간 다음 증기기관차를 타고 다시 곡성역으로 돌아오면 된다. 걸어갔다, 기차타고 돌아오는, 기가막히게 딱 들어 맞는 한나절 코스.
8. 장성 편백나무 숲길
전라남도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 금곡마을 뒷산은 한 치의 틈도 안보일 만큼 편백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금곡마을에서 시작되는 편백나무 숲길은 약 9km에 이른다. 느릿느릿 황소걸음으로 걸어도 3-4시간이면 충분하다.
'걷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남 금산] 오롯이 나 홀로 걷고 싶은 당신, 금산 보석사로 가시라 (0) | 2017.04.23 |
---|---|
괴산을 걷다! (1) | 2017.04.05 |
사람을 만나고, 자연과 하나되는 트레킹의 매력 (0) | 2016.04.24 |
촉촉한 산길 끝에, 나만의 아지트 있다. (3) | 2016.04.22 |
연둣빛 산길을 걷다! (0) | 2016.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