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 본래의 모습보다 숲길이 더 유명한 사찰이 있다. 오대산 월정사나 능가산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명소가 된지 오래이다. 몇 백 미터에 불과한 산사의 이 짧은 숲길들이 여행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이유는 뭘까. 제대로 된 숲길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산사의 고즈넉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포장도로와 생뚱맞은 거대한 구조물들은 오히려 여행자들의 외면을 받기 마련이다. 없다 보니 남은 숲길이 귀한 대접을 받을 수 밖에.
보석사 전나무 숲길은 200여 미터에 불과하지만 좁은 진입로에 빽빽이 들어찬 전나무가 인상적이다. 유명 사찰에 비해 조금은 덜 번잡하다. 평일이라면 고요한 산사의 정취를 즐기기에 더 없이 좋다. 보석사 숲길은 봄에는 연둣빛 신록, 가을에는 은행나무 단풍길이 펼쳐진다.
일주문을 지나면 영규대사의 충혼을 기리고자 세운 의병 승장(義兵僧將) 비각이다. 영규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계룡산 갑사와 보석사를 오가며 수도한 스님으로 보석사에는 영규대사가 머물던 전각인 의 선각이 남아 있다. 지금의 종무소 건물이다.
보석사를 보물은 전나무 숲길이다. 200m 정도로 짧지만 소박한 절집에 잘 어울린다.
유형문화제 제143호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711
이 절은 신라 헌강왕 12년(886년)때 조구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처음 세울 당시 절 앞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보석사라 하였다. 본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고,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다시 지어졌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옆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다포식 건물이다. 건물 안에 봉안된 불상은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3기의 좌상으로 수법이 섬세하다.
이 건물의 앞쪽 오른편에 의승장 영규대사가 머물렀던 의선각이 있다.
수령 1,100년 된 천연기념물 365호 보석사 은행나무
높이 40m, 둘레 10.4m의 이 은행나무는 보석사를 창건한 조구 대사가 제자 다섯 명과 함께 여섯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하나로 합쳐진 것이라고 한다. 마을이나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큰소리로 울어 재난에 대비토록 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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