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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금성대군과 단종의 한(恨) 많은 고갯길, 고치령을 넘다.

by 눌산 2017.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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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강원도 영월, 충 단양 삼도(三道)가 만나는 십승지의 고장,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에서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까지

십승지 중 한 곳인 의풍리. 의풍 삼거리는 경북 영주와 강원도 영월, 충북 단양이 나뉘는 삼도 접경이다. 삼거리에서 길은 각각의 고장으로 이어진다. 대신 좁고 높고 험한 고갯길이다. 영월 쪽은 김삿갓 묘가 있는 좁고 긴 노루목 골짜기이고, 베들재를 넘으면 단양, 마구령과 고치령을 넘으면 영주 땅이다. 한때는 오지 여행 마니아들의 인기있는 걷기 코스였다. 지금도 여전히 좁은 길이지만, 대부분 포장이 되었고, 고치령의 단양 땅만 비포장길이다. 수없이 걸었던 길인지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왕이면 옛 모습을 조금이나마 만날 수 있는 고치령(古峙嶺, 770m)을 넘었다.

의풍 삼거리.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鄭鑑錄)에 따르면 한국판 유토피아라 할 수 있는 십승지(十勝地)에 대한 기록이 전해져 온다. 정감록의 ''은 정씨를, ''은 천도(天道)와 풍수지리를, ''은 계시록 같은 예언서를 뜻한다. 십승지란 일종의 피난처, ‘숨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땅을 말한다. 전쟁이 나도 안전한 곳, 흉년이 들지 않는 곳, 전염병이 들어오지 못하는 곳으로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는 그 중 한 곳이다.

 

의풍 삼거리에서 영주 땅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두 개다. 하나는 부석사 방향의 마구령이고, 또 하나는 단산면 방향의 고치령이다. 모두가 험하기로 유명한 고갯길이지만, 마구령은 포장이 다 되어 있다. 고치령은 단양 땅만 현재 비포장도로 그대로다.

 

하지만 두 고개 모두 여전히 좁고 굽이가 심한 급경사로 가 많다. 드라이브 정도로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겠지만, 굳이 차를 타고 간다면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길이다.

 

고치령 입구 단양군과 경계에 세워진 경상북도 표지석

 

단양 땅을 벗어나면 포장도로다.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 영주 땅의 가장 끄트머리에 자리한 마을로 고치령 너머에 있다. 통행이 빈번하던 시절에는 유명한 주막거리였다.

 

마락리 중심마을 외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사람이 떠난 지 십 수년된 폐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집은 고치령을 처음 찾았던  30여년 전에도 폐가였다.

 

잿마루 바로 아래 약수터. 백두대간을 타는 산꾼들에게는 생명수다.

 

고치령. 영주와 단양의 줄임말로 보이는 '영단로'라는 도로명이 참 성의없어 보인다.

 

고치령 표지석. 오른쪽으로 가면 소백산 국망봉이고, 왼쪽으로 가면 부석사 뒤 마구령이다. 부석사 현판을 유심히 보면 '소백산 부석사'가 아니고 '태백산 부석사(太白山 浮石寺)'라 되어 있는데, 이는 마구령을 기준으로 태백산과 소백산이 나뉘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양백지간(兩白之間)이란 표현을 쓴다.

 

고치령 산령각.

고치령은 ‘단종애사’의 슬픔을 간직한 한(恨) 많은 고갯길이다.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돼 고치령 아래 순흥으로 유배된 금성대군이 조카인 단종이 보고 싶어 고치령을 넘어 영월 청룡포를 몰래 다녀왔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또한 단종 복위를 위해 밀사들이 오갔던 통로이기도 했다. 결국 밀고에 의해 단종 복위는 실패로 끝이 났고, 단종과 금성대군은 죽임을 당한다. 단종은 ‘태백산 산신령’이, 금성대군은 ‘소백산 산신령’이 되었다고 믿는 영주 사람들은 훗날 단종과 금성대군이 죽어서라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소백과 태백 양백지간(兩白之間)에 두 영혼을 함께 모셨다.

 

[Tip] 충북 단양군 의풍리에서 영주 땅 마락리를 지나 고치령을 넘으면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다. 거리는 총 20여㎞. 양쪽 모두 계곡이 좋고, 숲 그늘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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