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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이야기

왕정마을의 두 가지 보물, 수구막이 마을숲과 천연기념물 구상화강편마암

by 눌산 2023.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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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내내 내렸던 비가 그쳤다. 미세먼지와 꽃가루 때문에 뿌옇던 하늘이 덕분에 맑아졌다. 오랜만에 파란 하늘을 본다. 이런 날은 숲이 그리워진다. 생명력이 넘치는 5월의 숲은 향기로, 빛깔로, 소리로 우리의 오감(五感)을 깨운다. 초록빛 5월의 숲은 싱그럽다. 5월의 숲을 사람에 비유한다면, 생기발랄한 20대 청춘이 아닐까?

심리적 안식처, 마을숲

무주읍 오산리 왕정마을을 찾아간다. 왕정마을은 30번 국도가 지나는 오산마을에서 남북으로 길게 난 골짜기를 따라 약 2km가량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는데도 오르막이 없는 평탄한 길이다. 독특한 지형이다. 왕정마을에는 두 가지 보물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249호인 무주 오산리 구상화강편마암과 마을 숲이 그것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이 둘은 거의 신앙에 가깝다. 이것 덕분에 마을이 평안하고, 자연재해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첫 번째 보물은 주민들이 호랑이 바위라 부르는 구상화강편마암이다. 구상화강편마암 보호지역은 마을을 지나 골짜기 끝에 있다. 변성암 속에 공처럼 둥근 구상암이 들어있는 형태의 암석으로 그 희귀성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구상화강편마암은 그 희귀성만큼 찾아가는 길도 예사롭지 않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경사의 181개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원형 또는 타원형의 구상 구조가 마치 호피 무늬와 비슷하다고 해서 주민들은 호랑이 바위라고 부른다.

두 번째 보물인 마을숲은 마을 입구에 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70여 그루와 10여 그루의 소나무, 그리고 팽나무 한 그루가 한 덩어리로 뭉쳐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잎이 우거지면 숲에 가려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숲의 규모는 3,306, 길이는 약 120m에 달한다.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돌장승이 서로 마주 보며 세워져 있다.

무주에는 왕정마을의 경우처럼 마을숲이 잘 보존된 곳이 더러 있다. 대부분 전형적인 수구막이 숲이다. 수구막이는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거나 마을의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건물이나 탑, 나무 등을 가리키는데, 왕정마을의 수구막이는 숲이다.

우리 마을은 자연재해가 없어요. 특히 태풍이 지나갈 때면 숲의 진가를 알 수 있답니다. 아무리 바람이 세게 불어도 숲에서 한번 걸러 주기 때문에 마을에는 바람의 영향이 거의 없답니다.”

마을 주민 조명제(65) 씨의 얘기다. 이어서 조 씨는 마을숲을 예전에는 도탐배기라고 불렀어요.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도 있었다는 돌탑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는데, 70년대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돌탑은 사라지고 돌탑 위에 있던 장석만 숲에 남아 있게 되었답니다.”라고 했다.

마을숲에는 토착신앙과 풍수, 유교 등 우리의 전통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주민들은 매년 정월 초이튿날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지내는 산제의 맨 마지막을 마을숲에서 마무리한다. 마을 공동 산제가 끝나기 전까지는 산제당이나 마을숲에서 개인의 소원을 빌 수 없다. 산제가 끝나야 비로소 각자 소원을 빌기도 하고 공덕을 드릴 수 있었다. 이처럼 왕정마을 사람들에게 마을숲은 풍수 그 이상의 존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진안 마령고 교사와 진안문화원 부원장으로 있는 이상훈 씨는 자신의 저서 이상훈의 마을숲 이야기에서 마을숲의 의미에 대해 상대적으로 익숙한 마을 공간에서 덜 익숙한 외부 사회로 나갈 때 개인이 받는 심리적 불안감과 충격이 구불구불한 동구의 숲길에서 흡수되어 완충된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숲은 심리적 안식처라고 할 수 있다.”라고 표현했다.

사라지고 잊혀가는 것이 많은 세상에 왕정마을 마을숲은 여전히 역사, 문화, 민속적 가치를 품은 채 찬란한 5월의 초록빛을 뽐내고 있다.

무주신문 2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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