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도 쉬어 넘는 문경새재
제3관문인 조령관
영남 사람들이 한양으로 올라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번은 소백산 자락의 고갯길 하나를 넘어야 한다. 문경새재(650m), 죽령(689m), 이화령(548m), 고치령, 마구령, 하늘재(630) 등 지금도 옛길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는 많은 고갯길들. 그 중에서도 가장 번성했던 길이 바로 문경새재로 관광지화 되면서 드라마 촬영장이 들어서고 빙 둘러친 명산들로 인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문경 땅에서부터 차례로 주흘관(제1관문)-조곡관(제2관문)-조령관(제3관문)으로 이어지는 옛길은 6.5km로 두시간 거리. '나는 새도 쉬어 넘는 고개'란 뜻의 새재는 한양으로 가는 마지막 고개나 다름없었다. 더이상의 큰 고갯길이 없기 때문인데, 부산 동래에서 한양까지 천리길 (380km)중 가장 험한 고갯길이었던 것.
새재는 과거길이었다. 풍기의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워 떨어지고, 추풍령은 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속설 때문에 영남의 유생들은 이 새재길을 고집했다는 이야기.'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뜻의 문경(聞慶)이란 이름도 과거와 무관치 않다. 옛이름 역시 '기쁜 소식을 듣는다'는 뜻의 문희(聞喜).
충주에서 수안보를 지나 최근 개통된 소조령 터널과 이화령 터널을 빠져나가면 문경땅, 곧바로 문경새재 도립공원으로 들어선다. 주차장에서 잠시 포장길을 걸어 들어가면 KBS 드라마 왕건과 무인시대의 촬영장과 첫 관문인 주흘관을 만난다.민속촌처럼 꾸며진 드라마 세트장은 관광명소가 된지 오래, 하지만 조잡하기 그지없는 건물들을 보자니 그리 기분이 좋지 많은 않다. 이왕 만드는 거 제대로 만들어 놓던지..., 씁쓸하지만 그런 대로 볼거리 하나 더 늘어난 셈 치고 넘어가자.
주흘관에서 조령관까지는 야트막한 오르막이 이어진다. 오르막이 싫다면 반대로 걸어도 좋다. 맨들맨들한 흙길은 신발을 벗어 던지고 싶어질 정도로 촉감이 좋다. 중간중간에 만나는 계곡과 하늘을 가린 숲길은 힘든 산행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걷다 지치면 바위에 걸터앉아 쉬면 될 것이고, 뒤에서 빨리 가라고 다그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른 걸음으로 두시간, 왕복 네시간이면 넉넉하다.
조선 태종때 만들어진 새재길은 미륵사지에서 말구리재로 이어지는 신라시대 최초의 고갯길인 하늘재를 밀어냈다. 그 후 과거길의 유생들이나 민초들의 교통로로, 군사적인 요충지로 요긴하게 쓰이던 새재는 1925년 이화령이 뚫리면서 옛길로 남는다. 이화령 역시 그 아래 터널의 개통과 함께 등산객이나 여행자들의 쉼터로 그 명맥만이 유지되고 있다. 길에도 인생살이처럼 팔자가 있나보다. 기구한 운명의 하늘재가 있었고, 드라마 덕분에 잊혀졌던 새재길은 인파로 북적이니말이다.
조령산 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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