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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에 시내버스가 달리고, 첩첩이 두룬 산자락 사이로는 옥빛 물이 흐릅니다. 드문드문 자리한 산비탈에 바싹 달라 붙은 토담집에서는 모락모락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고, 손바닥 만한 하늘이 빼꼼이 얼굴을 내밉니다. 선계의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인과 단 둘이 숨어 들어가 호미 한자루 들고 한평생 땅을 파고 살아도 후회하지 않을 만한 곳이죠.
포항의 오지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산적의 소굴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이 집의 용도는 먹고 마시고 잠을 잘 수 있는 산장입니다.
산장은 산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갈 수 없는 산길로 2km, 보통 사람의 걸음으로 40분 쯤 걸리는 거리입니다.
마침 외출 준비를 하고 있던 안주인이 낯선 여행자들에게 몸에 좋다는 한방차를 내옵니다.
좁은 협곡을 빠져나오면 턱하니 넓은 분지가 펼쳐집니다. 사람의 마을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죠. 물이 있고, 농토가 있고, 산꼭대기다 보니 사방으로 교류하기도 좋은 위치입니다.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만 있어도 좋을 분위기입니다. 새소리는 음악이 되고, 흘러가는 구름은 TV가 됩니다. 음악이 없어도, TV가 없어도, 인터넷이 없어도 부족할 게 없지요.
본래 있던 토담집을 약간 수리했다고 합니다. 아랫채는 귀틀집으로 지었고요.
이 마을은 10여 년 전부터 드나들던 곳입니다. 하지만 이 집을 만난 건 올 봄이었죠. 다 쓰러러져 가는 집을 수리하던 중이었는데, 이렇게 말끔히 단장 된 모습을 보니 그저 말 문이 막힐 뿐입니다. 감동해서죠.
집주인은 이 집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어릴적에 고향을 떠났다가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들어왔다는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감히 이런 산중에서 살 생각은 못했겠죠.
열악한 환경이지만 동쪽으로 향한 오목한 분지는 따뜻합니다. 아랫마을에 비해서도 평균기온이 높다는군요. 덕분에 산수유 재배지로도 손색이 없다고 합니다. 마을에는 유독 산수유 나무가 많습니다.
이 마을의 유일한 주민은 이 노부부였습니다. 이웃이 생긴샘이죠. 할머니는 어느새 식혜 한병을 들고 나오십니다. 내 집에 온 손님 그냥 보내면 못쓴다면서요.
경상북도 포항에 있는 마을입니다. 동해바다가 지척이면서 내륙으로 깊숙히 들어와 있는 덕에 이런 산중마을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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