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일(2005/10/2-11/22)간의 낙동강 도보여행 기록입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었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고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은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광야> 이육사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陸士)의 본명은 원록으로
이곳 <이육사 문학관>이 있는 원촌마을에서 퇴계의 14대손으로 태어났다.
육사는 그의 아호로 수인번호 264번을 소리 나는 대로 부르게 된 것.
이른 시간인가.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문학관 관리 직원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덕분에 따끈한 모닝커피한잔 나누고,
정도 나누고……. 떠난다.
광야의 시상을 떠올린 <광야 오솔길>을 걷는다.
솔향 은은한 이른 아침에, 나 홀로 걷는 숲길.
구절초, 벌개미취, 패랭이, 취꽃……이 반긴다.
때 아닌 진달래도 피었다.
이른 추위에 파르르 몸을 떨고 있는 뜻밖에 만난 봄꽃이 기분 좋네.
20분쯤 걸었을까,
멋들어진 전망이 펼쳐진다.
봉우리 두 개가 묘지처럼 둥그렇게 솟아 있어 쌍봉이라 부르는 곳.
강은 휘어 흐르고, 사람의 마을은 그 안에 앉아 있다.
이곳이 바로 <광야> 시의 탄생지인가.
하계마을은 도산면소재지가 있었던 곳으로 1975년 안동댐 수몰지역.
고구마를 캐고 계신다.
이런길은 정말 싫다 싫어.
퇴계종택에서 도산서원으로 넘어가는 옛길을 찾아가는 길이다.
강으론 길도 없고 풀이 우거져
불가능할 것이라는 마을 어르신의 말씀대로 고역이지만 걷는다.
익모초? 층층이꽃?
상계마을, 성황당.
마을 주민이 은행을 줍고 있다.
퇴계 종택
폼은 그럴듯한데, 양말을 말리고 있다.
덜 마른 양말을 배낭에 넣고 다녔더니 냄새가나서…….
다시 만난 눈 가리고 아웅.
퇴계선생이 종택에서 도산서원을 오가던 옛길에
콘크리트 포장을 하고, 황토색을 칠해놓았네.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이 힘은 들지만, 반드시 내리막길도 있는 법.
포장만 안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용담
고갯마루 부분만 잠시 비포장일 뿐, 내리막길 역시 포장도로다.
도산서원을 방문한 여행자는 다시 자동차로 퇴계종택까지 이동하게 된다.
불과 10여분 거리. 이길을 몇 번 넘으면서, 그때마다 떠오르는 아쉬운 마음.
포장도, 황토 칠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놔두었더라면
도산서원에서 퇴계종택을 걸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도산서원에서 만난 안동시 공무원에게 이런 말을 전했더니, 이해를 못한다.
오히려 포장 했다는 자체를 잘했다는 듯이 자랑만 늘어놓을 뿐.
퇴계선생께서 이길을 보셨다면 뭐라 그러셨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걷다보니 도산서원이다.
식당은 없고, 컵라면에 삶은 계란 세 개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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