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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집

어머니의 밥상, 곡성 오일장 43년 된 밥집

by 눌산 2010.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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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서는 날이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화장을 했습니다. 아침 잠이 많은 아이도 이날 만큼은 일찍 일어나 장에 갈 채비를 합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화장하는 여자를 기다리는 일은 무지 지루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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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과 8일은 곡성 5일장이 서는 날입니다. 압록역에서 기차를 타고 곡성역에 내리면 머리에는 잔뜩 짐을 이고 손에는 또 다른 꾸러미를 든 장꾼들로 가득했습니다.  장터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입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부지런히 장터를 향해 걷는 사람들은 넓은 신작로를 매웠습니다. 아마도 이 동네 저 동네 사람들 죄다 모인 듯 했습니다. 장터는 북적거립니다. 장이 서는 날에는 언제나 그랬습니다.

장터를 한바퀴 돌고 난 어머니는 꼭 들르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 밥집입니다.

식당 주인 유재금 씨는 곡성 장날에만 문을 엽니다. 43년 째입니다. 신축건물로 이전한 장터를 따라 지난해 이곳으로 옮겨 왔습니다. 쌈빡한 건물에 윤기나는 식당 바닥은 그 옛날 장터 밥집 분위기는 나지 않습니다. 물어물어 찾아왔습니다. 손맛은 변하지 않았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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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장을 찾은 건 3년 만입니다. 아주머니는 눌산을 정확히 기억하십니다. "오랜만에 오셨소 잉" 설 대목장을 취재하러 왔다 그날 지갑을 잃어버렸습니다. '쓰리꾼(소매치기)'의 소행으로 짐작하지만 순간, 빈털털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3천원하던 백반 한 상을 비우고 계산을 할려니 지갑이 없는 겁니다. 황당한 경험이었습니다. "지갑 이저 뿐 것도 분한디 그냥 갈쇼 잉" 그렇게 공짜밥을 먹었습니다.

40년 전에도 저 아주머니는 장이 파할때까지 아궁이를 지키고 앉아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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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큰 아주머니는 주걱을 꾹꾹 눌러 밥을 담아냅니다. 이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다 배고픈 사람들이라면서. 오봉(쟁반의 일본말) 한가득 차려진 밥상은 혼자 먹기에는 많은 양입니다. 하지만 장터인심이라는게 그렇지 않습니다. 푸짐한 밥상에 인심은 덤으로 얹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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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건물로 이전한 곡성장터(http://www.nulsan.net/1017)를 보고 분개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만은 아닙니다. 곡성이 세상에 알려지고 수많은 여행자들이 곡성을 찾게된 것은 비단 '기차마을' 때문만은 아니었으니까요. 낡은 장터도 한 몪 분명히 했으니까요.

밥상 앞에 앉으면 뜨거운 눈물이 가슴을 타고 흐릅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아픈 기억들 뿐이지만, 그래도 그 옛날 장터가 그립습니다.


곡성 5일장은 3일과 8일에 섭니다. 백반집은 딱 하나 뿐입니다.  
옛날밥집 061-363-3049 / 한 상에 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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