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살았던 저 윗동네를 떠나 이곳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 온 건 고향이라는 이유보다는 순전히 추워서 였습니다. 산이 좋아 산중에서 살았지만. 어느 순간 '따뜻한 남쪽나라'가 그리웠습니다. 몽실몽실 봄 안개가 섬진강에 피어오르면 긴 겨울의 끝자락에 찾아오는 몸서리치는 그리움도 단박에 날려버릴 만큼 포근했습니다.
매화꽃이 낙화를 시작하면 섬진강에는 벚꽃이 만발합니다. 19번 국도를 중심으로 눈부신 꽃길이 만들어 집니다. 화개에서 쌍계사 입구까지 십리 길이 가장 볼만 합니다.
이 아름다운 길은 꼭 걸어서 가시기 바랍니다. 벚꽃 시즌이 되면 꼬리를 무는 차량 행렬로 십리 길은 백리 길이 됩니다.
좁은 도로지만 걷기 편하게 인도가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른 아침, 9시 이전이 가장 한가하고 좋습니다.
화개동천은 사방이 차밭입니다. 걸어서 오르기도 힘들어 보이는 급경사지만 산자락 빼꼼한 틈이 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차밭이 있습니다. '십리 벚꽃길'에 만족하지 마시고 산자락 차밭을 둘러보는 것도 좋습니다. 내려다 보이는 '화개동천' 풍경은 하나같이 작품감입니다.
언제부터 인가 묵직한 DSLR이 흔해졌습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구분도 없어지고. 작품의 수준 또한 높아졌습니다. 자연을 즐기는 또 나의 방법이겠지요.
제 고향은 이곳에서 30킬로 쯤 됩니다. 어릴적 엄마 손잡고 따라 왔던 화개 벚꽃놀이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봄 농사를 시작하기 전 시골 사람들은 이렇게 한바탕 꽃놀이를 즐겼습니다. 겨우내 움추려든 몸을 풀고 오랫만에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는 흥겨운 놀이 중의 놀이였지요. 제가 이 화개 벚꽃놀이를 다닌지도 40년은 넘은 것 같습니다.
쌍계사 입구를 지나 이 길을 따라 끝까지 들어가면 아(亞)자방으로 유명한 칠불사가 나옵니다. 입구에 비해 비교적 한산해서 좋습니다.
40년 전과 지금의 분위기는 많이 다릅니다. 구석구석 상가가 들어섰습니다. 음식점과 펜션들. 차 관련 판매점들. 찾아오는 사람들 또한 변했겠지요. 하지만 화개동천은 여전히 흐릅니다.
이쯤되면 남도의 봄은 절정입니다. 저 윗동네에서는 산중의 잔설이 녹아 흐르고 봄바람이 불겠지요. 제가 강원도에 살땐 그랬습니다.
화개장터에서 십리 벚꽃 길을 지나 쌍계사까지, 또는 그 위 불일폭포까지 다녀오시면 딱 하룻코스가 됩니다. 걸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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