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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지를 처음 만났던 그날도 바람이 불었다.
여인의 치맛자락같은 꽃잎은 골짜기를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렸다.
그곳이 바로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다.
하늘 아래 세상은 아니었다.
그래서 천상의 화원이라 이름 붙였다.
그렇게 얼레지를 처음 만난게 20여 년 전의 일이다.
얼레지는 바람을 만나야 제맛이다.
가는 대궁은 여지없이 흔들린다.
무더기로 피어나는 얼레지는 바람과 함께 춤을 춘다.
파인더로 보는 것보다, 눈으로 먼저 봐야한다.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껴야 얼레지를 알 수 있다.
'바람난 여인'이라는 얼레지의 꽃말은, 그래서 붙여진게 아닐까.
바람 만난 얼레지.
우연의 일치일까.
바람이 심한 이 계절에 피는 꽃들은 대부분 바람과 연관이 있다.
얼레지의 꽃말이 '바람난 여인'이고,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홀애비바람꽃, 쌍둥이바람꽃, 나도바람꽃이 다 이 즈음에 핀다.
훨훨 날아갈 듯 한 저 자태는,
홀로 피는 녀석들과는 다르다.
둘이어서 더 행복한 거겠지.
저 녀석들은 뽀뽀하다 들켰다.
보라!
홀로피어 토라진 저 표정을.
무더기로 피어나는 녀석들이지만,
단 하나도 똑 같은 표정이 없다.
보통은 연한 보랏빛이다.
햇볕을 받으면서 다양한 색을 연출한다.
가끔은 흰 얼레지도 있다.
역광에 속치마를 훤히 드러낸 요염한 얼레지도 있다.
봄볕을 맘껏 느끼는 표정이다.
이제, 얼레지 철이다.
남도에서 시작된 얼레지는 빠르게 북상해 이달 말이면 곰배령에 도달한다.
수없이 드나들었던 곰배령 아래 그 골짜기에도 피어날 것이다.
그곳은 눌산이 아는 가장 넓은 군락지가 있다.
올해도 마음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보랏빛 융단을 깔아 놓고 한나절 뒹구는 꿈을 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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