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섬, 뒷섬마을 아이들이 학교 다니던 옛길
무주에 새 길이 열렸다. '맘새김길'이라는 이름의 이 길은 본래 옛길이다. 뒷섬마을 아이들이 지금의 후도교 다리가 없던 시절 강변 길을 따라 향로봉 자락을 넘어 무주 읍내까지 학교 다니던 길로, 그동안 ‘학교길’로 불리던 곳을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한 ‘녹색길 공모사업’에 선정돼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이 길은 모두 네 개 코스로 나뉘어져 있는데, 향로봉을 넘는 무주 읍내에서 출발하는 ‘여행 가는 길’과 후도교에서 앞섬 다리까지 가는 ‘강변 가는 길‘, 그리고 앞섬 다리에서 시작해 북고사 갈림길까지 가는 ’소풍 가는 길‘, 무주고등학교에서 북고사를 넘어 후도교까지 가는 ‘학교 가는 길’, 앞섬 다리에서 출발하여 질마바위까지 가는 ‘소풍 가는 길’이다.
오늘 소개하는 길은 '소풍 가는 길'과 '강변 가는 길'이다. 앞섬 다리에서 시작해 북고사 갈림길과 질마바위를 지나 후도교까지, 다시 강을 건너 강변길을 따라 원점인 앞섬 다리까지로 거리는 약 5km, 소요시간은 아주 느린 걸음으로 세 시간 걸렸다.
출발지점인 앞섬교. 다리를 건너기 전, 매운탕과 어죽을 내는 섬마을과 큰손식당, 강나루가든이 들목이다. 섬마을 뒷편 계단으로 내려서면 사진의 표지석이 보인다. 앞섬마을과는 인연이 깊은,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표지석 뒷편에 써 있는 글이다.
앞섬교가 건설되기 전, 1976년 6월 8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앞섬 마을 아이들 열 여덟 명이 나룻배로 강을 건너다 사고를 당했다. 그 후 다리가 건설 되었고,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앞섬마을에서 강을 또 한번 건너야 했던 뒷섬마을 아이들이 다니던 길이 바로 지금의 '학교길'이다.
길은 곧장 숲으로 들어 간다. 촉촉한 흙길이라 발다박에 느껴지는 감촉이 좋다. 새로 길을 조성하면서 안전을 위한 줄을 쳐 놨다. 하지만 왠지 어설퍼 보인다. 가느다란 저 쇠파이프를 만지면 흔들려서 오히려 불안하다.
숲길이지만 대부분 구간에서 강이 보인다. 다슬기 잡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전망 좋은 곳도 있다. 강을 끼고 오른편 산자락으로 난 숲길을 걷는다. 돌아 올 때는 강 건너 강변길로 오면 된다.
전망대 표지판을 따라 160m나 올라갔다. 그런데 앞이 안보인다. 한마디로 헐~ 퍼질러 앉아 쉬었다. 카메라는 나무에 걸쳐 놓고 타이머로.
후텁지근한 날씨가 이미 여름이다. 시원한 강바람에 땀을 식힌다.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다. 이런 데크와 나무계단이 있어 걷기에는 나쁘지 않다.
간간히 이런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숲길과 강변의 정취, 모두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소풍 가는 길' 표지판이 연필이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방향과 거리 표시가 있었으면 좋겠다. 얼마나 왔는지 궁금하단 말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그게 인생이다.
다시 강을 만났다. 멀리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아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한 둑이다.
원앙 부부다. 인기척에 멀리 사라진다. 아니, 은밀한 장소로 이동 중이다.
북고사 갈림길을 지나면 향로봉 갈림길이다. 북고사나 향로봉을 넘으면 바로 무주 읍내. 뒷섬마을 아이들이 학교 다니던 길이다.
참 평화로운 강마을 풍경이다. 강 건너 복숭아 나무 밭에서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평소에는 소리에 민감한 사람인데, 이상 타. 땀흘리며 일하는 농부의 마음을 읽어서일까.
크은새가 인기척에 날았다. 재두루미?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는 그냥, 크은새다.
이제부터는 절벽 구간이다. 길이 넓어 위험하진 않다. 지금으로부터 약 40여 년 전 뒷섬마을 사람들이 아이들을 학교 보내기 위해 이 절벽길을 뚫었다. 사람의 손으로 정으로 쪼아 만든, 땀으로 만든 길이다.
마을 사람들은 저기 우뚝 솟은 질마바위를 정으로 쪼아 길을 만들었다. 콘크리트 바닥에는 '1971.5.20'이라는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람의 힘으로 이 엄청난 절벽을 뚫어 길을 만들었다. 대단하다는 말 밖에. 강을 두 번이나 건너야 했던, 당시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아카시아 나무숲을 빠져 나오면 후도교다.
후도교, 맘새김길 입구에 네 개 코스에 대한 자세한 안내도가 그려져 있다.
이제, 강 건너 보이는 저 강변길을 따라 출발했던 앞섬교까지 가면 된다.
후도교 다리 위에서 내려 다 본 풍경.
왼편이 걸어 온 길, 오른편이 걸어 갈 길이다.
금강이 396km니까, 무주는 상류라 할 수 있다. 금강변에는 매 1km 마다 이런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낚시꾼과 야영객이 보인다.
강촌체험센터? 뭘까, 궁금하다. 아니, 빤하다. 그 나물에 그 밥. 폐교 된 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에 거창한 건물을 신축 중이다. 우리나라 관리들은 신상을 아주 좋아한다. 산 하나 쯤 우습게 날려 버린다. 그러다 천벌 받는다.
'자연의 나라 무주'가 무색하다. 온통 신축 건물 일색이다. 그러다 '신축건물의 나라'가 될라.
앞섬마을, 앞섬교에 섯다. 오늘의 걷기 코스 종점이다. 이 사진을 올리는 이유가 있다.
금강 상류인 앞섬마을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內島里)가 행정상의 주소이고, 앞섬은 자연부락 명이다. 이 마을의 역사가 약 400여 년 정도 된다고 하니, 앞섬이라 부르게 된 때도 그만큼은 된 셈이다. 내도리는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통폐합과 한자화를 하면서 생긴 지명이다. 마을 표지석에도 앞섬이고, 새로 놓인 다리에도 ‘앞섬교’라 적혀 있다. 주민들 또한 앞섬이라 부른다. 그런데 관청에서는 '전도마을'이라 한다. 주민들 누구도 전도마을이라고 부르지 않는데 말이다. 앞섬을 한자화하면 전도(前島)가 된다. 관청에서만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지명을 쓰는 셈이다.
앞섬마을을 지나면 뒷섬마을이다. 뒷섬 역시 ‘후도(後島)’란 표현을 쓴다. 이 역시 앞섬과 같은 경우이다. 특히 육지 속 섬마을인 앞섬과 뒷섬 아이들이 다리가 없던 시절, 강을 건너지 않고 읍내까지 학교 다니던 ‘맘새김길’이란 옛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안내표지판에 전도마을이라 표기되어 있다. 이 마을을 처음 찾는 이들이라면 대단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래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부르던 지명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시절에나 했던 한자화를 굳이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군청에 확인해봤더니 조례가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럼 당장 조례를 바꿔야한다!
[찾아가는 길] 앞섬교 건너기 전에 있는 섬마을 식당을 찾아가면 된다. 식당 뒷마당이 들목이다.
주소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1357-1 (섬마을) 063-322-2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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