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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섬진강 도보여행 -2] 진안 방화마을에서 임실 옥정호까지

by 눌산 2013.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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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이틀 째 날이 밝았다.

기상시간은 6시.
몸은 무겁지만,  빡빡한 일정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방화마을 어르신들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어제 비에 젖은 몸도, 옷도 어느 정도 말랐다.


다시, 출발이다.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었던 방화마을회관.
출발 5분 전이다.



고요한 마을이다.
연로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으로 멀리 백운산과 마이산이 바라 보이는, 섬진강 변에 위치해있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다 콩타작하는 어르신의 일손을 도와 드렸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얻어 마시고 길을 나선다.



지랄 같았던 첫날 날씨에 비해 화창하다.
하지만 뚝 떨어진 기온 덕분에 춥다.



바람까지 불어 험난한 하루를 예고한다.
방화마을 옆에 있는 계남마을의 '사진전시관 계남정미소'에 들렀지만 겨울에는 문을 닫는다고 쓰여 있다.



멀리 아버지와 아들이 길을 걷고 있다.
매서운 강바람에 중학교 2학년인 기현이가 걱정되지만, 묵묵히 잘 걷는다.
일정을 마친 후 언제가 가장 힘들었냐고 기현이에게 물어봤을 때, 바로 이튼날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 매서운 바람까지, 겨울 도보여행에서 최악의 조건이었다.



이번 일정 내내 EBS 취재 팀이 함께 했다.
똑 같이 걷고, 아니 촬영을 위해 두 배로 걸었다.



마이산을 뒤로 하고 마령면을 벗어나면 동굴 속 정자 수선루를 만난다.

조선 숙종 12년(1686) 연안 송씨 4형제가 조상의 덕을 기리고 도의를 연마하기 위해 지은 2층 목조 건축물이다.
고종 21년(1884)에 송석노가 고쳐 세웠으며, 고종 25년(1888)에 송병선이 다시 고쳐 오늘에 이른다.
앞에는 섬진강 상류천이 굽이돌아 좋은 경치를 이루는 산의 바위굴 속에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수선루(睡仙樓)는 신선이 낮잠을 즐기며 유유자적한다는 뜻으로, 연안 송씨 4형제가 80세가 넘도록 아침 저녁으로 정자를 오르내리며 바둑도 두고 시도 읊는 모습이 옛날 4호(四皓)의 네 신선이 놀았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하여 이름 붙였다고 한다. -문화재청 자료



수선루에서 아버지와 아들.



수선루에서는 멀리 섬진강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데미샘의 작은 우물이 크고 작은 물길을 받아 들여 제법 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다시 길을 떠난다.



강바람은 시간이 갈 수록 매섭게 몰아 친다.
이 험난한 길을 선뜻 떠나겠다고 나선 기현이가 대견스럽다.
'아빠와의 여행'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취재팀의 SOS다.
기현이가 발바닥이 아파 더 이상 걸을 수 없단다.
확인해 보니 신발이 문제였다.
협찬 받은 트레킹화가 너무 딱딱한 재질이라 발바닥 뿐만이 아니라 발등까지 통증을 호소했다.
이 상황에서 다른 방법은 없다.
치료를 할 수도 없고, 중단할 수는 더더욱 없다.
내 신발을 벗었다.
도보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발이라는 생각에, 항상 신발만은 가장 편하고 좋은 걸 신기 때문에 바꿔 신으면 문제가 해결 될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후, 예상했던대로 발의 통증을 호소하는 일은 없었다.



점심으로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요량으로 방좌마을 마을회관에 들렀다.
사실, 도보여행 중에는 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는 공간은 마을회관 뿐이다.
겨울 농촌에는 집에 사람이 거의 없다.
대부분 마을회관에서 지내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무슨 라면이냐며 남은 밥과 먹음직스러운 김치와 생배추로 순식간에 밥상을 차려 주신다.
빵과 사탕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다시 길을 나선다. 



기현이의 발이 걱정됐지만, 잘 걷는다.
아니, 걸어야 된다는 생각 뿐이었을게다.
완주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안전을 위해 차량통행이 빈번한 도로를 피해 제방 길을 택했지만, 강바람을 마주하며 걸어야 한다.
때론 마른 풀이 우거진 힘겨운 길을 뚫고 지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없이 이어지는, 길.
걷는 내내 두 부자는 말이 거의 없었다.
아빠는 아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기현이는 아빠와 함께 하는 여행의 설레임으로 시작한 도보여행이기에,
굳이 말을하지 않아도 두 부자는 통하기 때문이다.



해질무렵이 되서야 임실 사선대에 도착했다.
한낮에도 영하의 기온이 몸을 꽁꽁 얼게 만든다.
걷지 않으면 더 춥다.



사선대에서 내려다 본 오원천.
섬진강의 또 다른 이름이다.





 


결국, 사선대에서 어둠을 맞았다.
하지만 내일 아침 옥정호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근처까지 가서 자야 한다.

가장 추웠고, 매서운 바람을 만났고, 힘들었던 날이다.






이번 여행을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람'이었다.

'여행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늘 중심에 있었기에, 나는 지금도 여행을 하고 있는 지 모른다.
기현이에게, 기현이 아빠에게 사람 사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연출을 하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걷다 마을을 만나면,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마을회관에 들르는 방식이다.
밥 때가 되면 어김없이 어르신들은 밥상을 차려 주셨고, 걷기에 힘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여전히 시골인심은 후했다.
뉴스 속 세상이 아닌, 사람 사는 세상은 따뜻했다.
아마도, 기현이가 어른이 되면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때때로 떠오르는 추억 속의 사진을 꺼내, 다시 그 길을 되짚어 걷기여행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섬진강 도보여행, 3일 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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