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에서 보이는, 아스라이 이어지는 산길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저 산 너머에는 누가 살까. 산 너머 풍경이 궁금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이 궁금하다. 나의 여행은 언제나 길에서 시작한다.
며칠 전 내린 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아무리 사륜구동이라지만, 이런 진흙길은 눈길보다 더 위험하다. 일반 승용차는 절대 갈 수 없는 길이다. 아마도 모르고 갔다면, 그냥 눌러 살아야 할 것이다.
지도에는 분명 길이 끊겨 있었다.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넘으니 넓은 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사람이 산다. 강 건너에도, 산 너머 골짜기 깊숙한 곳에도.
강변에는 복사꽃, 조팝꽃, 살구꽃이, 산자락에는 눈송이 보다 더 고운 산벚꽃이 만발했다. 감히 누가, 산 너머에 이런 풍경이 있을까 상상이나 했을까.
차에서 내려 걸었다. 걷고 싶은 욕구가 마구마구 솟구친다. 무엇보다 이런 길을 차를 타고 간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골바람은 여전히 차다. 하지만 때때로 불어오는 훈풍에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꽃이다. 눈이 부셔 제대로 뜰 수가 없다. 곱다,보다 눈이 부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봄날이다.
호수인가, 강이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흐르는 강이다. 강변은 적막강산이다. 고요에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도 묻혀버렸다.
산이 강이고, 강이 산이 되었다.
사람의 길은, 여기까지다. 산은, 사람의 발길을 막아버렸다. 유유히, 협착한 골짜기를 빠져나가는 강이 부럽다.
정지화면 같은, TV의 무음모드같은, 갑자기 다가오는 이 비현실적인 느낌은 뭘까. 그렇다고 아주 낯설지는 않다. 뭔가 익숙하면서도, 꿈이라도 꾼 느낌이랄까. 자그락거리는 내 발자국 소리에 내가 놀랜다. 다시 산을 넘어 현실의 세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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