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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떠날까, 일상에 지친 몸 잠시 뉠 자리 찾아 사람들은 마음부터 바쁘다. 한갓진 계곡을 찾아, 푸른 바다를 찾아 집을 나서보지만 떠날 때 기대했던 그 휴식의 공간은 떼거지로 몰려든 인파 속에 이내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좀 여유롭고 진정한 쉼의 공간은 없을까, 태고의 신비가 가득한 양양 땅 미천골로 들어가 보자. 그곳에 가면 가슴속까지 속시원히 뚫어 줄 원시림과 청정옥수가 기다릴 것이다.
미천골계곡
선림원의 쌀뜨물이 내(川)를 이루었다는 미천골
원시의 때를 벗어버린 미천골은 그래도 아직은 오지다. 세속에 물들어 간다고나 할까, 하지만 남대천 상류 지류로 응복산(1,359m)과 암산(1,152m), 조봉(1,182m) 등 하늘을 좁힌 산봉우리들과 멍에골, 상지골, 산죽밭골 등 10여개가 넘는 지류들이 모여 만든 미천골은 지형 상으론 오지 중의 오지인 것이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가장 높은 도로인 운두령(1,089m)과 우리나라 국도 중 마지막으로 포장된 56번 국도를 따라 아흔 아홉 구비 구룡령 고개를 내려서면 양옆으로 다가서는 울창한 수림 사이로 미천골의 신비는 펼쳐진다.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떠나버린 자리에는 민박과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어 입구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여기는 오지가 아니다."일 것이다. 하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원시림은 이내 무공해 자연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데,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가꾸어 가는 자연의 속내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보여준다.
미천골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불교사원이었던 선림원(禪林院)에서 씻는 쌀뜨물이 내(川)를 이루었다하여 붙여진 지명. 산사태로 흙속에 뭍혀버린 선림원은 지금 그 터만이 남아 있는데, 당나라 유학승 출신으로 애장왕 왕비의 등창을 고쳐주어 왕의 하사금으로 802년 해인사를 지은 순응법사가 2년뒤인 804년에 창건한 절이다.
당시의 선림원 터에는 보물 제444호인 삼층석탑과 석등, 홍각선사 탑비와 부도가 남아 있고, 순응법사가 창건과 함께 주조한 법종은 통일신라 대표적인 범종으로 알려진 상원사 범종, 에밀레종과 함께 귀중한 유물이었으나 1948년에 발굴돼 오대산 월정사에 보관되오다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퇴각하는 국군에 의해 불타버린 월정사와 함께 사라져버렸다한다.
불바라기 산장
원시 밀림 속에 자리한 휴양림과 불바라기 약수
자! 이제 본격적인 미천골 여행을 시작해보자. 1996년에 완공된 56번 국도와 1993년 개장한 미천골 자연휴양림은 오지 속의 오지 미천골을 밖으로 끌어낸 계기가 된다. 산막과 야영장, 자연관찰원 등 여행자를 위한 편의 시설이 들어선 휴양림은 눈으로 보기만 해도 시릴 정도로 차가운 계곡 물이 흐르고, 하늘을 가린 숲길은 그저 터벅터벅 걷기에 그만이다.
휴양림 산막이 자리한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면 보기 드물게 개인이 운영하는 산장이 있다. 협착한 골짜기 안, 빨랫줄이라도 걸라치면 그냥 걸릴 것 같은 산을 등지고, 그 앞에 눈 높이를 마주한 또 다른 산이 이색적인 '불바라기 산장'이다. 실용음악을 전공한 부인과 낙향한 김명석 씨가 운영하는 산장 주변은 온통 꽃밭이다. 안주인의 정성이 만든 이 아름다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그저 복이 터진 사람들이리라, 잠시 그 안에 들어서서 느껴보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몇 해 전 모 방송사의 '그 해 마지막 목요일'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산장을 찾은 연인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이 드라마를 본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이국적인 느낌의 산장과 아름다운 자연, 포근함이 넘쳐흐르는 산장의 밤, 바로 이 드라마을 촬영한 장소가 불바라기 산장이다. 늦은 밤 사람들이 모여들고, 산장 여주인은 피아노 음악을 연주한다.
계곡의 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1시간 가량 산길을 오르면 불바닥이란 뜻의 불바라기 약수가 기다린다. 폭포 위에서 뻘건 불기둥처럼 솟아 나오는 약수는 철분이 주성분으로 위장병에 약효가 있다고 전해 오는데,
해발이 높아지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하늘빛을 벗삼아 다녀올 만하다.
[Tip] 영동고속도로 속사 나들목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운두령을 넘어야 한다. 곧이어 만나는 56번 국도를 갈아타고 우리나라 국도 중 가장 늦게 포장 된 구룡령을 내려서면 미천골과 만날 수 있다. 휴양림을 지나 불바라기 산장까지 포장과 비포장 도로가 번갈아 나오는데, 모두 승용차 진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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