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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오지마을 구절리(九折里)에는 걸출한 산이 하나 있다. 해발 1,322m의 노추산(魯鄒山)인데, 산 좋아하는 이라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명산으로 이율곡 선생이 공부했다는 이성대(二聖臺)가있다. 2층 구조의 목조 건물로 아래층에는 공부방 3개가 있고, 2층은 공자와 맹자를 모신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성대란 이름도 두 성인을 모신 곳이란 뜻에서 붙여진 것.
밤나무와 이율곡 선생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재밋는 전설이 하나 전해온다. 노추산 이성대에서 이율곡 선생이 공부를 하고 계실 때 산신령이 나타나 밤나무 1천주를 심어야만 화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해 그대로 1천주의 밤나무를 심고나서 다음날 그 숫자를 확인해보니 1주가 부족하더란다. 마침 그때 밤나무하고 비슷한 녀석(?)이 "나도 밤나무요!"하고 소리를 치며 나타났는데, 보아하니 밤나무하고 아주 흡사했다나..... 아무튼 1주의 밤나무가 부족한 터라 “그래, ‘너도밤나무구나!’”하여 1천주의 밤나무 심기는 무사 통과하였고, 너도밤나무란 나무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정선선의 종착역이었던 구절리역은 레일바이크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실제로 구절리의 자개(自開)골에 가면 아주 오래된 밤나무 고목이 많다. 밤나무가 군락을 이룬 자개골은 자시(子時)만 되면 어김없이 바위가 스스로 벌어졌다 닫친다고 해서 스스로 ‘自’자와 열 ‘開’자를 써서 생긴 지명으로 이율곡 선생이 은거한 이성대와는 지척간이라 황당한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구절리역에서 여량(아우라지)역까지 레일바이크가 달린다.
그런데 이 너도밤나무 이야기는 이 곳뿐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접할 수가 있는데,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리(栗田里)에 가도 똑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마을 지명조차도 밤나무 밭인지라 ‘밤밭이(밤바치)’로 불리는데, 온통 돌밭 투성이라 특별히 농사가 안되다 보니 아주 오래 전에는 밤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고랭지채소가 돈이 좀 되면서 밤나무를 뽑아내고 배추를 심기 시작해 이젠 밤바치란 지명이 무색할 정도로 한 그루의 밤나무도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구절리 자개골 이야기와 다른 점은 이율곡 선생이 어릴 적 병약하여 이 인근으로 요양차 오게되었는데, 꿈에 나타난 산신령이 1천주의 밤나무를 심으면 병을 낫게 해주겠다고 한 점이 다를 뿐이다. 아무튼 너도밤나무란 이 재치 있는 녀석(?) 때문에 이율곡 선생은 병을 고치게 되었다는 얘기.
구절리 민가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
또 하나, 울릉도에 가도 너도밤나무 군락을 만날 수 있다. 배를 타고 왔는지, 축지법으로 날라 왔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울릉도에 온 산신령은 주민들에게 밤나무 백그루를 심으라고 했다. 섬이라는 열악한 환경 탓이었는지 1천그루에서 백그루로 많이 봐준 듯하다.^^ 주민들은 그 말대로 밤나무 백그루를 심어 정성 들여 가꾸었는데, 어느 날 아랫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성격의 산신령이었는지 다시 나타나 시킨 대로 잘 하고 있나 검사를 하게된 것. 그런데 아무리 숫자를 세어봐도 한 그루가 모자란 99그루였던 것이다. 그래 화가 난 산신령은 울릉도 주민들에게 벌을 내리려고 딱 폼을 잡는데 이때도 마찬가지로 “나도 밤나무요.”하고 나타난 ‘너도밤나무’ 때문에 산신령의 화는 풀리게 되었다는 얘기다.
구절리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구절리, 밤바치, 울릉도에 전해오는 이야기의 공통점은 밤나무하고 닮은 너도밤나무 덕에 모두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점이다. 심성 착한 민초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얘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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