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 야생화 피고, 벚꽃·복사꽃 흐드러지게 핀 꽃길
입춘 추위가 대단했다. 영하 10도 아래로 뚝 떨어진 강추위에 봄을 기다리던 마음까지도 움츠러들었다. 허나, 누가 뭐래도 봄은 온다. 우수와 경칩을 지나면서 날이 풀리기 시작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해바라기하기 좋은 3월이다.
숲에서 만난 봄의 전령 복수초, 너도 바람꽃, 노루귀, 얼레지....
무주의 산은 야생화의 보고(寶庫)다. 특히 적상산과 덕유산에는 귀한 야생화가 골골마다 피고 진다. 이른 봄 제일 먼저 피는 적상산 너도 바람꽃은 빠르면 2월 말부터 피기 시작한다. 다음으로 복수초가 피고, 꿩의 바람꽃, 현호색, 괭이눈, 나도 바람꽃, 피나물이 약속이라도 한 듯 차례대로 피어난다.
자연의 섭리는 오묘하다. 계절이 빠르니 느리니 사람들은 말이 많지만 야생화는 이유 불문, 자연의 이치에 따라 매년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꽃을 피운다. 응달진 골짜기에는 아직 눈이 가득한데도 한 뼘이 안 되는 키 작은 야생화는 언 땅을 비집고 눈을 녹여 꽃을 피운다. 경이로운 생명의 탄생이다.
너도 바람꽃은 적상면 북창리 일대, 복수초는 적상산성 서문지 주변에 군락지가 있다. 그 중 복수초는 적상산에 우리나라 최대 군락지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해발 1천 미터에 육박하는 고산에 서식하다보니 추위에 민감하다. 보통 적상산의 복수초는 3월 중순에 꽃을 피우는데, 춘설이라도 내린 다음에 가면 눈 속에 핀 설중(雪中) 복수초를 만나는 행운을 얻을 수도 있다.
복수초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복수초(福壽草)’라는 이름에는 ‘복(福)’과 ‘장수(壽)’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 꽃말은 ‘영원한 행복’. 눈 속에서 피는 연꽃이라 해서 설연화(雪蓮花), 얼음 사이에서 꽃이 핀다고 해서 ‘빙리화(氷里花)’ 또는 ‘얼음새꽃’ 등의 이름도 갖고 있다.
박완서 작가는 에세이 ‘꽃 출석부2’에서 샛노랗게 빛나는 복수초를 보고 “순간 (중학생 아들의) 교복 단추가 떨어져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깊은 산에서 자라는 야생화지만 요즘은 관상용으로 정원에 심기도 한다.
야생화의 여왕이라 불리는 얼레지는 주로 덕유산 골짜기와 구천동 계곡 주변에서 볼 수 있다. 3월 말에서 4월 초부터 피기 시작하는 얼레지는 연보랏빛으로 그 꽃이 화려해 한번 보면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싶다. 꽃잎을 활짝 펼친 한낮에 보면 멕시코 모자를 닮은 것 같기도 한데 큼지막한 잎의 얼룩진 무늬가 특징이다. 꽃말은 ‘바람난 여인’. 가는 대궁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때문에 붙여진 듯하다.
숲 속 야생화의 절정은 단연 4월 말부터 적상산 능선에서 무더기로 피어나는 피나물이다. 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먹을 수 없는 독초로 노란 꽃이 군락을 이루고 핀다. 마치 ‘천상의 화원’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군락지가 장관이다. 피나물 군락지의 모습을 보노라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가 아이들과 노래하던 초원이 떠오른다. 단지 초록빛이 아닌 노란 꽃밭이라는 게 다를 뿐.
꽃비 흩날리는 벚꽃과 연분홍 복사꽃 꽃길 로드
무주의 벚꽃은 4월에 들어서면서 절정을 이룬다. 읍내 골목마다 줄지어 선 벚꽃나무 가로수에 큼지막한 꽃잎이 달리고 이내 꽃비가 날린다. 그즈음이면 한낮의 한풍루에는 상춘객들이 삼삼오오 둘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긴 겨울 끝에 만나는 봄날의 한가로움이다.
무주 벚꽃 로드라 할 만한 길고 깊은 길이 남대천을 따라 이어진다. 금강과 합류하는 남대천 하류 무주읍 대차리 서면마을에서 시작해 무주읍을 지나 설천면 나제통문, 그리고 구천동 계곡을 따라 절정을 이룬다. 그 길이가 무려 40여 km에 달한다. 구천동 벚꽃길은 한때 축제를 열 만큼 소문난 길이다. 벚꽃이 만개하면 한눈에 쏙 들어오는 굽은 길에서 사진을 찍는 인파로 인해 지나는 차량들도 서행을 한다. 지금은 도로변에 나무 덱을 깔아 산책로를 만들어 놨다.
설천면소재지 뒷작금은 코로나 이전까지 벚꽃 축제를 연, 한 시절 시끌벅적했던 벚꽃 명소다. 따로 축제를 열 만큼은 아니지만 적상천 주변이나 안성면 구량천 주변도 벚꽃길이 있으며, 금강변마실길이 지나는 잠두마을 건너 옛길과 상굴암마을 가는 길 역시 한번쯤은 꼭 가볼 만한 곳이다.
벚꽃이 질 무렵이면 복사꽃이 피어난다. 대표적인 곳은 무주읍 앞섬마을. 앞섬마을은 주민 대다수가 복숭아 농사를 짓는다. 육지 속 섬마을답게 앞섬교와 뒷섬 다리를 사이의 마을 주변이 다 복숭아밭이다. 연분홍 복사꽃이 피는 4월 중순이면 온천지가 다 꽃밭으로 변한다.
남대천 하류 서면마을 서면교 다리 건너 언덕 위에도 복사꽃밭이 펼쳐진다. 언덕 너머 남대천과 금강이 아스라이 보이는 풍경이 복사꽃과 어우러져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이른 아침 물안개와 산안개가 도움을 준다면 그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4월 말에는 무주만의 명물이라 할 수 있는 등나무운동장에 등꽃이 만발한다. 고 정기용건축가의 무주공공건축프로젝트로 탄생한 등나무운동장은 이미 전국적으로 소문난 명소다. 건축가는 자신의 저서 ‘감응의 건축’에서 “서울에는 상암 월드컵경기장이 있고 무주에는 등나무운동장이 있다.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등나무운동장”이라고 할 만큼 애정을 담았다고 전해진다.
숲 속의 야생화부터 벚꽃, 복사꽃, 등꽃으로 이어지는 무주 봄꽃의 향연은 3월부터 시작해 길게는 5월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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