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만 4천명이 채 안 되는 소읍 무주 최북미술관
“무주에 미술관과 문학관이 있어요? 산촌으로만 알았는데 예술의 고장이군요””
“아니 인구가 얼마나 된다고 이런 시골에 미술관에 문학관까지 있다니!”
안옥선 무주군문화관광해설사의 말에 따르면 관광객들이 최북미술관과 김환태문학관을 처음 방문하면 대부분이 이처럼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약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지만 놀라움과 부러움의 표현이라 생각하고 더 적극적으로 해설을 한다”라고 했다.
조선 후기 화단의 거장, 최북의 작품세계
무주 생활 15년째인 기자도 최북미술관을 자주 가진 못했다. 고작 1년에 두어 번 정도로 먼데서 지인이 찾아오거나 하면 최북미술관과 김환태문학관을 데리고 갔다. 솔직히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우리 무주에도 미술관도 있고 문학관도 있어!”하는 심정으로. 대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시설들이겠지만, 인구 2만 4천명이 채 안 되는 소읍에서는 사실 보기 드문 시설이다.
조선 후기 화가로 이름을 날린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1712~1786년경)은 생몰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무주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무주에 최북 미술관이 있는 이유다. 숙종 때 태어나 영조 때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생을 마친 최북은 타고난 재능과 남다른 개성으로 다양한 소재의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최북은 중인(中人) 신분이었기에 그의 생애를 온전히 알 수 있는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그의 예술 세계를 흠모한 사람들의 평전을 통해서 그에 대한 기록이 전해져 오고 있다.
최북은 김명국, 장승업과 함께 조선 3광(狂)이라 부를 만큼 기인으로 알려져 있다. 금강산을 여러 번 답사한 최북은 구룡폭포에서 “명인은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고 뛰어내렸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는 이야기와 최북이 ‘애꾸눈 화가’가 된 사건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 일화다. 권력자가 그림을 그려 달라고 협박하자 “차라리 내 자신을 자해할망정 남에게 구속받지 않겠다.”며 송곳으로 자신의 한쪽 눈을 찔러 멀게 했다. 그 후 최북은 화가에게 목숨과도 같은 한쪽 눈을 버리고 애꾸눈이 되어서 전국을 유랑하며, 자유로운 화가로 살아간다. ‘붓 한 자루에 의지해 먹고 산다’는 뜻의 ‘호생관(毫生館)’이란 호만 봐도 그가 진정한 ‘조선의 아웃사이더’였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2012년 현재의 위치에 개관한 최북미술관은 김환태 문학관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전시관에서는 최북의 파격적이고 대담한 화풍을 살펴 볼 수 있고, 아울러 최북의 생애와 연보 및 조선의 문화까지 엿볼 수 있는 예술 공간을 만나볼 수 있다. 현재 최북의 영인본 작품 60여 점과 진본인 ‘괴석도(怪石圖)’와 ‘공한(空閒)’이 전시되어 있다.
안옥선 무주군문화관광해설사를 통해 ‘공한‘이 전시관에 걸리기까지의 사연도 들을 수 있었다.
“전직 대통령 환수품 중에 화첩이 하나 있었대요. 화첩 안에 최북의 작품이 있었는데, 화첩 전체를 구입하기에는 워낙 고가라 엄두도 못 냈겠죠. 그러다 화첩을 분리해 작품을 하나씩 따로 경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주군에서 구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북은 메추라기를 잘 그려 ‘최메추라기’란 별명도 있었답니다.”라면서 그는 유난히 통통한 메추라기 그림을 보여줬다. 그리고 간결하고 세밀한 풍속화와 부채에 그린 설경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어졌다. “여름에 쓰는 부채에 설경을 그려 놓은 것은 시원하라는 의미도 있었답니다.”라는 소리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직접 해설을 듣지 않았다면 분명 감흥이 덜했을 것이다.
사위는 어두워지고 있고 눈 덮인 험준한 산 아래 나무들이 바람에 꺾일 듯 휘어져 있는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이란 그림 앞에서 기자는 걸음을 멈췄다. 그림 속에는 눈보라 치는 겨울날, 가난한 초가집 앞을 지팡이를 든 사내와 어린 아이가 쓸쓸히 걸어가고 있고, 이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에 예민한 개가 요란스레 짖어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성곽 모퉁이에서 동사체로 발견된 최북 자신의 삶을 표현한 것이라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부평초처럼 떠다닌 화가 최북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한눈에 봐도 매우 거칠고 빠르게 그려낸 티가 확연한 이 그림은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손으로 그린 지두화(指頭畵)다. 지두화는 지화(指畵), 지묵(指墨)이라고도 하는데 손가락이나 손톱 끝에 먹물을 묻혀서 그린 그림을 말한다.
최북미술관은 3층 전시관 외에 2층 기획전시실에서 연중 기획전이 열린다. 1층으로 내려가면 현재 무주문화원에서 주관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보물을 품은 동네 무주展’이, 특별전시관에서는 ‘무주지역 등단작가展’이 열리고 있어 함께 둘러볼 만하다.
[알고 가면 좋은 tip]
최북미술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미술관에는 무주군문화관광해설사가 상시 근무하지만, 가끔 순회 해설을 나가는 경우가 있어 자리를 비우기도 한다. 해설이 필요하다면 미리 전화로 문의하고 가는 게 좋다. 무주군관광안내소 063-324-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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