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러운 풍경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나라 전통 가옥
강원도 정선 동강변 오지마을에서 돌너와집을 처음 만났다. 멀리서 보면 마치 물고기 비늘을 이어놓은 듯한 모습이었는데, 저무는 햇살이 돌너와에 부딪혀 반사된 빛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소중한 보물을 만났다
십수 년 전, 기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돌너와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첫 느낌을 말하자만, 소중한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무주에서 돌너와집을 볼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며가며 바라만 보다가 두어 번 방문했으나 집주인이 없어서 지붕만 바라보고 돌아 나온 적도 있었다. 묵을 대로 묵은 돌너와집에는 과연 누가 살까 궁금증이 더해갔다.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붕을 바꿀 만도 한데 아직도 그대로라니 이 집, 참 매력적이다.
이 집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적상면 사산리 마산마을이다. 19번국도 안성면과 구천동 갈림길인 사산교차로 우측 도로변에 있지만, 4차선 도로 소음방지 칸막이에 가려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너와집은 소나무를 널빤지 모양으로 잘라 지붕을 이은 것으로, 맑은 날은 나무가 수축하여 통풍이 잘 되고, 비오는 날은 습기를 빨아들여 빗물이 새는 것을 막아 준다. 그야말로 단순하면서도 대단히 과학적인 지붕 재료라 할 수 있다.
돌너와집은 말 그대로 지붕의 원재료가 돌이다. 납작한 돌을 기와처럼 지붕을 얹은 까닭에 지역에 따라 돌너와집은 돌지붕집, 돌기와집, 돌집, 돌능애집, 돌능와집 등으로도 불린다. 돌너와로는 주로 점판암(粘板岩)을 사용한다. 2~3cm 두께의 얇은 돌을 작두를 이용해 가로 세로 한 자 정도의 크기로 자른 후,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겹쳐지는 방식으로 얹어 놓는다.
원형이 잘 보존된, 67년 된 돌너와집
돌너와집의 주인은 정석규(90)·길순임(87) 부부다. 2년 전에 찾아갔을 때만 해도 정정하셨던 부부는 지금 건강이 많이 안 좋다고 했다.
“전에 언젠가 저 돌너와를 뜯어서 팔라고 누가 찾아온 후로 집 구경하겠다고 찾아온 사람은 선생이 처음이라오. 저 길 위에서는 잘 안 보이거든”이라면서 당신이 애지중지 관리해온 집에 관심을 보인 기자에게 그간의 얘기보따리를 하나둘 풀어 놓는다.
“딱 67년 됐어. 이 집을 짓고 이사한 그날 저녁에 우리 큰 딸을 낳았거든. 그때만 해도 우리 동네에 돌너와집이 다섯이나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지고 우리집 아래채 하나만 남았어. 한옥이라 지붕에 얹은 흙이 자꾸 떨어져 관리하기 어려워서 다 뜯어내고 양철지붕으로 바꿔버렸지.”
연세가 있으신 데도 어르신은 촘촘한 생선 비늘 같은 돌너와 지붕을 매년 손 보고 있다. 돌이라 크게 파손은 안 돼도 사람 손을 필요로 하는 곳이 더러 있다고 하셨다.
마을 앞을 지나는 19번 국도가 4차선으로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국도는 어르신 집 바로 앞을 지났다. 지금이야 그 도로가 골목처럼 좁아 보이지만 명색이 국도였다. 그리고 그 길이 40여 년 전 마을 사람들이 피땀으로 닦은 도로라는 것도 어르신의 설명을 듣고 알게 되었다.
“옛날에는 여기가 참 도로 사정이 안 좋았거든. 소로(小路) 하나뿐이었으니까. 내가 그 당시 이장할 땐데, 우리 마을 137가구가 한 달 반을 부역해서 마을 앞을 지나는 길을 만들었어. 그랬더니 당시 군수가 안성재 너머 도촌마을까지 길을 뚫어 줍디다.”
당시 주민들은 읍내까지 나갈 수 있는 도로가 절실했다. 이장을 맡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르신은 마을길을 위해 자기 집을 뒤로 8m나 옮기는 대공사를 해야 했다.
어르신은 당시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일을 하면서 구멍가게를 겸한 우편취급소와 ‘무주약국 사산리 지정소’라는 독특한 간판을 걸고 약을 팔기도 했다. 말하자면 약방으로, 약사가 아니기 때문에 약을 조제할 수는 없고 읍내의 약국과 계약을 맺어 간단한 의약품을 팔았다.
사라지고 잊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정석규·길순임 어르신 부부처럼 소중히 지켜온 ‘우리 것’이 아직은 남아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알고 가면 좋은 tip]
마산마을을 지나는 길이 있다면, 돌너와 지붕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길 권한다. 대신, 노부부가 사는 가정집이라 반드시 밖에서 집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둘러보는 게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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