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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이야기

남대천과 금강이 만나는 소이나루(召爾津) 섶다리

by 눌산 202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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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반딧불축제 섶다리, 강마을 사람들의 생활문화

예부터 사람들은 강을 끼고 모여 살았다. 물이야말로 사람이 살 수 있는 조건 중 가장 중요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강 주변을 중심으로 농경문화가 발달하였고, 지금처럼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배를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강이 담당하였다. 그런 이유로 남대천이 금강과 만나는 무주읍 대차리 서면마을은 무주를 들고나는 주요 관문이었다.

'가다리'라 부르던 지금의 세월교 아래서 아이들이 물수제비를 뜨며 놀고 있다.

무주 반딧불장터에서 남대천을 따라 가는 도로 아래로 강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서면마을 입구에 다다를 무렵의 벼랑 구간만 제외하고는 내내 강변길이 이어진다. 반딧불장터에서 서면마을까지는 4km, 길은 다시 1.5km 가량 더 이어지다 벼랑 아래서 끝이 난다. 이 길을 서면마을 사람들은 ‘S라인 길이라 부른다. 굽이진 길의 모양 때문인데, 날이 풀리면서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서면마을 세월교

서면마을의 전통문화 ‘섶다리’

기자는 몇 해 전 서면마을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담은 소이나루 사람들이란 책을 썼다. 1년여 간 마을을 드나들면서 서면마을 사람들과 마을의 역사, 그리고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기록했다. 서면마을하면, ‘섶다리. 서면마을을 섶다리 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섶다리는 서면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소중한 삶의 지혜요, 오랫동안 뿌리내린 전통문화다

금강과 남대천이 만나는 지리적인 여건으로 인해 서면마을에는 두 강을 가로지르는 섶다리를 놓아오던 풍습이 있었다. 무주반딧불축제때 남대천에 섶다리를 놓던 주민들이 바로 서면마을 사람들이다. 생활문화가 지역문화로 뿌리내리게 된 것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서면마을 섶다리 놓기는 무주 대표 축제인 반딧불 축제를 한층 빛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해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통나무와 솔가지를 이용해 가교를 놓는 섶다리는 총 길이 80m, 1.2m의 규모로 옛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시설물이다. 축제 기간 중의 섶다리 밟기공연은 서면마을 주민들이 직접 섶다리를 설치하고, 전통혼례와 농악놀이, 상여행렬까지 재현한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관람객들이 다리 밟기에 직접 참여해 볼 수 있어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을,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전통체험 행사로 자리매김 했다.

 

섶다리 대신 콘크리트 다리가 놓인 옛 소이나루

도로가 만들어지기 전, 하천으로 둘러싸인 서면마을 곳곳에는 섶다리가 놓여 있었다. 지금의 서면교 건너인 다랏들이나 성저내들’, ‘작은 뫼나 용포리 쪽으로 가는 작은내다리’, 땔감이나 퇴비를 하러 강을 건널 때 이용한 앞내()다리와 삼밭구미 여울아래 소내다리까지, 해마다 홍수로 인해 다리가 떠내려가더라도 장마철이 지나면 으레 섶다리를 다시 놓았다. 이 밖에도 작은내와 금강이 합류하는 근처를 왕내다리라 불렀고, 강 하류 건너편을 가다리라고 불렸던 것을 보면 그곳에도 섶다리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금강과 남대천이 만나는 서면마을 서면교

일제강점기에 신작로(新作路)가 개설되면서 자동차가 건널 수 있는 목조 다리가 가는골앞에 세워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름철 우기만 되면 떠내려가기 일쑤여서 자동차를 싣고 강을 건널 수 있는 큰 배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이때부터 서면 마을은 교통의 요충지로서 크게 번창하는 계기가 된다. 1939년 용포리에 용포교가 가설되고 수백 년 동안 강을 오가던 사람들과 애환을 함께 했던 소이나루의 나룻배는 역사 속으로 묻히게 된다. 당시의 강 건너 신작로는 금강변 마실길이라는 이름으로 도보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1977년 주민 공동으로 가꾼 마을 뒷산 소나무를 벌채하여 얻어진 수익금으로 작은내 다리를 허물고 콘크리트 다리(현재의 서면교는 2004년 새로 건설)를 놓으면서 섶다리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서면마을 앞에 세워진 '소이진에서시비

서면마을의 본래 지명은 대촌(大村)’이다. 예나 지금이나 큰 마을이다. 그 이전 지명이 소이진(召爾津)’서호(西湖)’였다. 소이진, 즉 소이나루는 무주를 들고 나는 나루가 있어 붙여진 지명으로, 나루 주변에는 관리들의 숙소인 소이원(召爾院)’이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조선 선조때 당시 금산군수인 이안눌이 재임시절(1611~1613)에 지은 소이진시비가 세워져 있다.

서호(西湖)’는 마을 앞 넓고 깊은 강이 마치 호수 같아서 당시 관아(官衙)로부터 서쪽의 호숫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지금도 금강과 남대천이 합류하는 지점은 호수처럼 물이 잔잔하다.

전통방식으로 재현된 소이나루 공원의 섶다리

[알고가면 좋은 TIP]

서면마을 소이나루 공원에 섶다리를 재현해 놓았다. 규모는 작지만 못하나 사용하지 않은 전통방식으로 제작된 섶다리는 선조들의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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