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의 교감’ 무주읍 공공건축물의 가치를 만나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등나무 운동장, 무주군청 리노베이션과 뒷마당 공간
봄빛이 무르익었다. 연둣빛은 어느새 초록빛이 되었다. 이즈음이면 기자는 등나무운동장을 생각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등나무운동장을 찾았다. 아침에도 가고 저녁 무렵에도 갔다. 열다섯 해째다. 관중석을 빙 둘러 지붕을 덮은 등꽃이 핀 풍경을 보기 위해서다. 기자는 감히 이 풍경을 무주 제1경이라 꼽는다. 지난 15년 동안 평균적으로 등꽃이 만개한 시기는 5월 5일을 전후해서다. 올해도 역시 빗나가지 않았다. 5월 5일 어린이날 등나무운동장에는 보라색 등꽃이 활짝 피었다.
등나무 운동장과 무주군청 뒷마당
등나무운동장의 등꽃 구조물을 설계한 건축가 정기용은 등나무운동장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의 저서 ‘감응의 건축’ 137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서울에는 상암 월드컵경기장이 있고 무주에는 등나무운동장이 있다.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등나무운동장이.” 유명 건축가가 한낱 소읍의 공설운동장을 이렇게 치켜세운 예가 또 있을까?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다. 또 있다. 124쪽에서는 “등나무운동장은 필자가 무주에서 10여 년 동안 한 일 중에서 가장 인상 깊고 감동적이며 필자를 많이 가르치게 한 프로젝트다. 한마디로 말해, 모더니즘 건축이 놓친 자연과 인간의 ‘교감’과 ‘감성’을 내게 일깨워 준 작업이다”라고 말했으며, 이어서 그는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시간을 다루는 일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중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라며 건축과정에서 느낀 감정과 자신의 작품에 대한 겸손함을 기록으로 남겼다.
평소에는 발길이 뜸한 등나무운동장이지만 등꽃이 만발하는 계절이 오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걷기도 하고 사진을 찍으며 관람석을 따라 걷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람석 맨 뒤 열을 따라 걷는다는 것이다. 이유가 있다. 등나무운동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팁을 정기용 건축가가 자신의 저서에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운동장 한가운데, 정문과 후문, 관람석 아래 열, 그리고 건축가가 추천한 맨 뒤 열 등,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보이는 느낌이 다르다. 전체적인 모습을 한 눈에 담기에는 건축가가 얘기한 맨 뒤 열이 최적의 장소다. 그리고 한쪽 끝에서 한쪽 끝까지 걸으며 천천히 음미하듯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통한 감성을 느껴보는 것이다. 기자 역시 이 방법을 즐긴다.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서 맨 끝부분까지 채 10분이 안 걸리는 거리지만,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 운동장과 반대편 한풍루가 있는 지남공원 일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때론 맞은편 맨 끝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거짓말처럼 나타난 사람과 마주 보며 걷다 눈이라도 딱 마주치면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낯선 사람도 친구다. 등나무운동장의 진가가 입소문이 나면서 등꽃이 만발하는 시기가 되면 멀리서 여행 삼아 오는 이들도 많다. 등나무운동장은 이제 단순한 구조물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지역의 가치 있는 자산이자, 의미 있는 관광자원이기 때문이다. 하여, 나뭇가지 하나 자를 때도 신중해야 한다. 육안으로 보이는 어수선한 나뭇가지라고 해서 무작정 자르다가는 듬성듬성 피어있는 등꽃을 보게 될 수도 있다. 혹시 단정한 정리가 필요하다면 꽃이 진 후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 어떨까?
무주군청도 공공건축물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했다. 낡은 옛 건물을 그대로 두고 3층 증축과 뒷마당 주차공간을 지하화한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롭게 탄생되었다. 정기용 건축가가 무주군청 리노베이션을 계획하면서 가장 역점을 두고 진행했던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도시환경 속에서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그 도시에 사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줄 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운 건축이어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건축물이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줘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친근하게 다가가고 시민들과 호흡하는 편안한 장소로서의 공적 영역의 특질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건축가는 여기서 사람과 건물을 격리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주차 문제를 꼽았다. 그런 의미에서 무주군청 리노베이션 사업은 기존 주차장을 지하화하여 뒷마당 공간을 주민들의 공간으로 남겨두는 것이었다. 현재는 뒷마당 공간에 추가로 나무를 심고 화단을 조성하면서 본래보다 많이 축소되었다. 주민들은 그동안 벼룩시장이나 프리마켓을 이 공간에서 열 곤 했는데, 뒷마당의 공간 축소는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
건축가 정기용은 누구이고, 무주에는 건축가에 의해 탄생한 공공건축물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나라 지역 공공 건축에 있어 큰 발자취를 남긴 고 정기용 건축가는 1996년부터 2008년까지 약 10여 년에 걸쳐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앞서 언급한 등나무 운동장을 비롯해서 적상면의 서창박물관, 우리나라 면사무소 공중목욕탕의 시발점이 된 안성면사무소와 설천면의 곤충박물관 등 30여 건에 달하는 공공건축물을 무주에 남겼다. 무주 이외에 그가 참여한 작품으로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MBC가 기획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에서 순천, 진해, 제주, 서귀포, 정읍, 김해에 여섯 개의 어린이도서관을 설계하였고,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와, 2010년 개관한 '박경리 문학의 집' 등을 설계하였다. 2012년에는 고인의 삶의 철학과 그의 마지막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각본/감독 정재은)’가 개봉되기도 했다. 이후 우리나라 공공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축학도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무주 공공건축물에 대한 답사가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정기용건축가는 사람과 땅의 의견을 듣는 ‘감응의 건축가’이자 공공건축의 대표 건축가로 ‘건축계의 공익요원’, 또는 ‘공간의 시인’으로 불린다.
무주 공공건축물프로젝트는 소읍에 수십 개의 공공건축물을 세웠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건축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무주신문 무궁무주(無窮茂朱)! 열아홉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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