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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김삿갓 유적지에서 부석사까지 마구령 옛길 트레킹

by 눌산 2008.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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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김삿갓 유적지에서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까지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편리함을 쫒다보니 옛길 하나쯤 없애는 일이 뭐 대수냐 하겠지만 그 하나쯤은 남겨두면 어떨까 싶다. 터벅터벅 걸어 넘던 길이 어느날 반듯한 포장도로로 바뀌어 있을때의 기분이란, 꼭 뭐 씹은 느낌이랄까. 개발=발전, 이건 결코 아니다. 언젠가, 좀 더 잘 살게 되었을때 포장 된 그 길 다시 뜯어내고 흙먼지 폴폴나는 비포장 도로로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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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계곡에 있는 '민화박물관'

조선후기 방랑시인 김삿갓. 짙은 해학과 풍자를 담은 시들을 비롯, 기이한 행동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김삿갓의 생애와 업적이 이곳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에 모셔져 있다. 큰 삿갓을 쓰고 대나무 지팡이 짚고 한평생을 떠돌아다닌 방랑시인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으로 자신이 역적의 자손이며, 비록 모르고 한 일이지만 스무 살 때 영월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조부를 비난하는 시로 장원하고 자신의 죄를 통탄하며 1828년 산을 내려와 죽어서야 끝나는 34년 간의 방랑이 시작된다.

김삿갓의 묘소가 있는 곳은 노루목으로 김삿갓 계곡을 따라 좁은 골짜기를 한참을 들어가면 넓은 들이 나온다. 바로 협착한 골짜기가 노루의 목처럼 가늘다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그의 묘소가 있다. 저녁 노을을 보고 술 생각이 간절해 읊었다는 "천 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떠돌다보니/....... /황혼에 술집 앞에 이르니 어찌할거나" 등  그가 남긴 시들과 돌탑들이 묘역을 지키고있고,   노루목에서 마대산 중턱 어둔골 골짜기를 따라 1.5킬로쯤 오르면 그의 생가가 있다. 한낮에도 어두운 골짜기라 해서 어둔골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은둔처답게 오목한 골짜기가 밖에서는 전혀 눈치채기 힘든 숨겨진 곳이다. 아마 답답한 자신의 심경을 삭히고 살기에는 너무 좁은 곳이었겠다 싶을 정도. 매년 10월이 되면 그의 예술혼을 추모하고 문학세계를 재조명하기 위해 '난고 김삿갓문화큰잔치'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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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목의 김삿갓 묘역

반듯한 아스팔트길에 허연 시멘트 포장도로. 흔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길들이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한적한 오솔길 같은 옛길이 생각난다.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진 입맛이 쌉싸름한 씀바귀 김치를 찾듯이. 바쁘다 못해 정신없이 살아가는, 여유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세상에 옛길을 걸어 넘는 일은 한가로운 사람들의 사치일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나 시간이 아까우면 밤새 차를 달려 잠시 잠깐의 산행으로 여유를 부리는 세상이니 말이다.

사라져가는(?) 옛길이라는 표현이 어울릴까, 그렇다! 재너머 장보러 다니던 길, 보부상들이 비즈니스를 위해 넘나들던 길, 그 옛길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문명의 이기가 만들어낸 도로의 포장과 확장, 개발로 인해 먼 옛날 옛적 이야기로만 전해질 운명의 옛길을 따라 걸으며 느긋하게 돈 안 드는 사치 좀 부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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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목의 천렵하는 사람들

마구령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임곡리 부석사에서 부석면 남대리를 지나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로 넘어가는 옛길이다. 일부 구간은 아직도 승용차로 넘기에는 버거운 비포장도로에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를 지나는 길로 심산유곡의 정취를 맘껏 즐기기에 좋은 한적한 길이다.

마구령 옛길은 부석면 소재지에서 부석사를 향해 가다 임곡리 한밤실마을 입구 부석초등학교 남대분교 표지판이 서 있는 두봉교 다리가 들머리. 멀리 산자락을 휘감고 도는 길의 윤곽이 휜히 보여 들목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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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단양군 의풍리와 경상북도 영주시 남대리 경계에 세워진 표지석. 이 지역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뿐만이 아니라 강원도 영월군과의 경계지역이기도 하다.

일단 마을을 벗어나면 본격적인 옛길의 흔적이 여느 길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구령 정상에 서면 소백산과 태백산 양백지간에 홀로 선 옛길이 유유히 흐르고, 고갯마루의 사람 냄새는 수많은 이들이 갖가지 사연을 간직하고 넘나들었던 온기일까, 이내 발걸음은 옛 사람들이 목을 축이기 위해 들르던 주막거리로 내달음 친다.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는 분위기가 갑자기 너른 들판을 만난다. 주막교라고 쓰여진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면 첫 번째 민가가 나오는데, 주막집 한 채 달랑 있는 곳 지명 자체가 '주막거리'다. 지금은 폐허가 된 상신기 마을과 남대리 방향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자리한 주막거리. 오가는 길손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한때는 번화했으리라 짐작해본다.

남대천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남대리와 의풍리의 드문드문 자리한 민가들이 나오는데, 정감록이 전하는 예언의 땅을 믿고 찾아 든 이들이 자리잡고 산다. 들고 나는 게 사람 사는 동네라는데,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였을까, 그들은 그렇게 새둥지 마냥 산과 산으로 둘러싸인 남대리와 의풍리를 찾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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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리 주막거리의 옛 주막집.

부석초등학교 남대분교를 지나면 거대한 돌 표지석이 서 있다. 경상북도 영주와 충청북도 단양의 경계에 세워진 표지석이다. 흐르는 물길을 막을 수는 없는 일. 경상도 물이니, 충청도 물이니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남대천은 흘러 흘러 방랑시인 김삿갓이 잠든 의풍 땅으로 흐르고 있다.

의풍초등학교가 있는 솔밑에 서면 영주시 단산면으로 넘어가는 고치령과 단양군 영춘에서 넘어오는 베틀재, 고갯길이 없는 유일한 통로인 강원도 영월 땅 노루목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경상도 땅에서 출발해 충청도를 지나 강원도로 접어들었지만 모두가 한마을 같다. 걷는 여행인데, 굳이 알 필요도 의식할 필요도 없는 행정상의 구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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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810미터 마구령 정상. 부석사에 가면 일주문에 '태백산 부석사'라고 쓰여져 있다. 부석사 가까이에 소백산이 있고, 태백산하면 너무 먼거리라 의아해 할 수도 있다. 그건, 이 마구령을 기준으로 북쪽은 태백산 줄기, 남쪽은 소백산 줄기로 나뉘기 때문이다. 곧, 부석사가 위치한 곳이 태백산 줄기라는 뜻.

김삿갓 묘지가 있는 노루목은 말 그대로 좁은 협곡을 들어와 만나는 넓은 분지 때문에 생긴 지명으로 김삿갓의 생가가 있는 어둔골이 30분 거리로 가깝다. 십여년 전만해도 사륜구동 아니면 엄두도 못내던 진입로는 이제 반듯한 포장으로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하늘과 땅과 물 뿐. 잠시 산중의 고요에 젖어 보자. 세상과 등진 삶을 살다 간 김삿갓의 영혼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만 은 이렇게 라도 여유를 부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사는 우리네가 잘못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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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령 고갯마루에서 바라 본 풍경, 마구령을 넘으면 남대리 부석사 앞이다.



[트레킹 Tip] 마구령의 출발지는 영주 부석사와 영월 김삿갓 유적지, 총 17km로 약4시간 거리다. 부석사 입구 임곡리 두봉교 다리-(1.3km)-임곡2리 한밤실 마을-(4.7km)-마구령 정상-(2.5km)-주막교-(0.2km)-주막거리-(1.7km)-남대분교-(1.8km)-표지석-(2.9km)-고치령, 베틀재 갈림길에서 우측으로-(2.9km)-노루목 김삿갓 유적지. 고치령은 의풍초등학교가 있는 솔밑마을에서 영주시 단산면 옥대리로 넘어가는 길로 마락리를 지나 소백산 매표소가 있는 좌석리까지는  약 5시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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