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속의 섬' 강원도 평창 문희마을과 절매마을
저에게 동강은 천국이었습니다. 한때였지만요.
더없이 아름답고. 지친 몸 편안히 쉴 수 있었던 안식처이기도 했습니다.
줄배 없인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육지 속의 섬'과도 다름없는 오지 중의 오지였지요.
지금은 대부분 다리가 놓이고 길은 반듯하게 포장이 되었습니다.
그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강 건너 마을이 문희마을과 마주 보고 있는 절매(折梅)마을입니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면.
그 여인과 몰래 숨어들어가 살기 딱 좋은, 그런 곳이죠.
한때 동강 지킴이로 알려진 정무룡 씨가 사는 절매마을이다.
영락없는 '육지 속의 섬'으로 저 철선이 아니면 꼼짝달싹 할 수 없는 갇힌 신세가 된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美灘) 면소재지에서 42번 국도 정선 방향으로 2킬로미터를 가면
'동강 가는 길'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동강은 이미 유명 관광지가 된지 오래라 관광지를 표시하는 밤색 표지판이다.
좁은 도로를 따라 동강 가는 길은 기화천을 따르게 된다.
처음엔 하얀 백자갈이 깔린 강바닥을 드러내지만
동강이 가까운 마하리에 다 다를쯤에는 수량도 많고 물빛 또한 동강의 지류답게 맑다.
기화천은 겨울에 가면 제맛을 느낄 수 있다.
그건 강바닥으로 스며들었던 물이 위로 올라오면서 기온 차에 의한 물안개를 만들어 내기 때문으로
평소에는 물이 마르는 건천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물안개는 사방으로 번지며 시시각각 다른 그림을 그린다.
그런 모습을 만나려면 아주 추운 겨울 아침이 제격이다.
동강의 관문인 마하리의 석문.
마하리는 동강과 만나는 기화천의 끝마을.
관광지답게 입장료를 받는다.
동강댐이 백지화되면서 '효율적 관리를 위한 목적'의 명목으로 이용료를 징수하고 있다.
곧바로 동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좁은 협곡이 끝나면서 짠하고 나타나는 동강은 크고, 넓고,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넓은 평지 끝에 만나는 끝없이 떨어지는 절벽을 만난 기분이랄까,
동강은 범상치 않은 외모에서도 알 수 있듯,
그저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런 강이 아니다.
아니, '아니었다'가 더 맞는 표현이지 싶다.
'동강댐 백지화' 이후 동강은 옛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섬진강을 지리산에 비유하자면, 동강은 설악산이다.
강가에서, 산에서, 물 속에서 만나는 동강은 특별했다.
잔잔한 여울이 있는가 하면, 거센 물살에 뗏꾼들도 벌벌 떨었다는 '된꼬까리' 여울까지
동강은 참으로 많은 얼굴을 갖고 있다.
줄배가 유일한 이동 수단인 강 건너 마을은 영월 땅이다.
마하리의 좁은 협곡을 벗어나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는 동강은
첫만남이라면 아마 뒤로 나자빠질 만큼 깜짝 놀라게 한다.
강 건너는 영월 땅이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해도 동강변 마을은 대부분 줄 배가 유일한 이동 수단이었다.
하지만 다리가 놓이게 되고, 그러면서 이 줄 배도 사라지게 되었고,
이젠 몇 군데 남아 있지 않은 보기 드문 일이 되었다.
서울 촌놈(?)들은 물만 봐도 좋을 것이다.
더구나 이 티 없이 맑은 옥빛 물빛은 그간의 긴장된 마음을 느슨하게 해주고,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여행자들이 나룻배를 타고 물놀이를 하고 있다.
가만가만 앉아 물소리를 듣기도 하고,
원앙이 부부의 사랑놀이를 염탐하며 내심 부러워하기도 한다.
이런 한가로움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여행은 휴식이다.
또,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 속에서 힘을 얻어갈 것이다.
흐느적 흐느적 참 걷기 좋은 길이었지.....
'황새여울'은 뗏꾼들도 그 거센 물살에 벌벌 떨었다는 공포의 여울이다.
아우라지에서 조양강을 흘러 처음으로 만나는 장벽이다.
물살이 하도 세다보니 뗏목은 엎어지고,
사람까지 상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목숨을 걸고 뗏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뗏목을 운송한 후 받는 노임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에는 거금을 만질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을 것이고.
'떼돈'을 번다는 말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로
'뗏꾼'들이 받는 노임이 바로 '떼돈'인 것이다.
마하리에서 문희 마을로 가다보면 갑자기 물소리가 요란해진다.
잔잔해 보이지만 양 산 골짜기를 치며 울려 퍼지는 물소리는 웅장하다.
이 '황새여울'을 잘 통과했다해도 또 하나의 여울이 기다린다.
어라연을 바로 지나며 만나는 '된꼬까리 여울'이다.
이 두 여울만 무사히 통과하면 '전산옥'이란 여인이 운영했다는 주막집이 기다린다.
긴 물길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막걸리 한 사발과 여인의 구성진 아라리 가락이
그들에게는 목숨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소중했으리라.
볼록볼록 솟아 오른 산이 칠족령이다.
그 아래로는 문희마을, 누런 황톳빛 토담집 몇 채만이 있던 작은 마을,
이젠 모두가 초현대식 건물에 '무슨 무슨' 펜션 간판을 걸고 있다.
황새여울 모퉁이를 돌아가면 문희 마을이다.
뒤로 턱하니 버티고 선 칠족령과 백운산이 아늑하게 다가오고,
강은 크게 굽이치며 끝없이 이어지지만
물길의 끝에 선 느낌처럼 앞뒤가 막힌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황톳빛 담배 건조막이 집집마다 한 채씩은 있었다.
그러다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한 조립식 건물들은 마을의 그림을 바꾸어 놓았다.
모두가 무슨 무슨 펜션이란 간판을 내걸고,
동강인지, 똥강인지 모를 한국의 '그랜드캐년(?)'이라는
동강의 속살을 보기 위해 찾아드는 사람들을 기다린다.
도로가 없어 걸어다니던 시절이 불과 7-8년 전의 일이다.
위험구간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 참 어색하다.
아주 오래 된 사진, 문희 마을 앞 강변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꽁지머리 사진...
어느 겨울날, 동강댐 문제가 조금은 시들해 질 무렵.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문희마을 여행을 했었다.
흰 눈이 쌓인 강변에 앉아 "또 다시 찾을 수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한 장 박았고,
그리고 다시 그 강변에 서게 된 것이 4-5년은 된 것 같다.
강 건너에서 나룻배 한 척이 스르르 미끄러져 나온다.
나물 뜯으러 산에 올랐던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이다.
내집처럼 드나들던 정무룡 씨댁은 강 건너에 있다.
'꺾어다 놓은 매화꽃처럼 생겼다.'는 절매마을의 유일한 집이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너른 자갈밭이 있고,
그 뒤로 집 한 채, 그리고 모두가 절벽으로 가로막힌 섬이나 다름없는 곳.
동강의 상징과도 같은 그림들을 한자리에서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앞으로는 천연기념물로 영구 미공개 동굴로 지정 된 백룡동굴이 있고,
뒤로는 마을 주민들이 난을 피해 피난 생활을 했던 피난 굴이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의 피난처가 또 있을까.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면.
그 여인과 몰래 숨어들어가 살기 딱 좋은 곳이다.
강 건너 외딴집으로 가는 줄배.
일곱 봉우리가 볼록볼록 솟아오른 칠족령이 부챗살을 펼쳐 놓은 듯 두 눈을 감싼다.
그곳에 오르면 사행천(蛇行川) 동강의 구절양장 물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그 사이사이로 새 둥지 마냥 사람의 마을이 들어앉아 있다.
황톳빛이 아닌 하얗고 파란 지붕만이 달라졌을 뿐,
동강은 그대로다.
위험구간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든다.
걸어서 다니던 길, 4륜구동만이 겨우 다닐 수 있던 길이 이젠 추락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까지 서 있다.
[여행 tip]
영동고속도로 새말IC를 나와 42번 국도만 따라가면 된다.
안흥-방림-평창읍-미탄-정선-백봉령-동해로 이어지는 코스로
미탄면소재지에서 2km쯤 가면 우측으로 '동강 문희마을 가는 길' 표지판이 서 있다.
기화천을 따라 마하리에서 입장료(1,500원)을 내면 곧바로 동강과 만나고,
강변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4km를 가면 길이 끝나는 곳이 문희 마을이다.
강 건너 절매 마을의 정무룡 씨 집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문희 마을 뒤로 칠족령과 백운산 산행 코스가 있고,
칠족령을 넘어서면 영화 '선생 김봉두'를 촬영했던 폐교 된 연포 분교가 있는 연포 마을,
다리가 놓인 소사 마을과 마주보고 있다.
소사 마을에서 물레재를 넘으면 동강 상류를 거슬러 오르는 강변 길이
정선의 가리왕산 자연 휴양림 입구까지 이어지고,
반대편 길은 신동읍 소재지를 지나 영월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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