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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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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에, 솜이불 폭설이 몰고 온 강추위에 온 세상이 꽁공 얼어버렸다. 무려 50cm란다. 올들어 세 번째, 동해안 일대에 내린 폭설이다. 부처님! 솜이불 덕분에 추위 걱정 덜게 되셨습니다.
겨울과 봄의 밀당 봄볕에 몸 말리고 마음 말려 놨더니,비에, 눈에, 매서운 바람에, 눈보라까지.다시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대충 좀 하지, 밀당 치고는 좀 심하다.
첫눈 때아닌 폭설에, 우두둑,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물기 가득한 습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는 설해목들이다. 이런 습설은, 설해목은 3월쯤에나 볼 수 있는데, 첫눈에 이런 경우는 참 드물다. 남쪽에는 여전히 떠나지 못한 가을이 맴돌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겨울로 순간이동 한 느낌이다. 도톰한 자켓 입어주고, 히터 빵빵하게 틀고, 첫눈 만나러 간다.
雪냥이 영하 20도에, 1미터가 넘는 폭설, 무주생활 5년만에 최악이다. 아니, 최고다. 눈만 보면 환장하는 사람이니 최고가 맞다. 발바닥에 물만 조금 묻어도 싫어하는 다롱이는 눈밭을 뛰어 다닌다. 눈을 먹고, 눈밭을 구르고, 우리 다롱이 신났구나~ 다롱아~ 눈 치우러가자~
雪國, 눈의 나라 무주 할 말이 없다.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쌓인 눈만 대충 1미터가 넘는다. 눈을 치우는 건지, 눈 치우는 놀이를 하는 건지, 치워도 치워도 그대로다. 눈의 나라 무주 만세~^^
무주폭설, 눈에 대한 기억들 숯 굽는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늘 산에서 살았다. 덕분에 방학때면 어김없이 산 생활을 했다. 텐트라는 것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라,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비닐을 씌운 천막 생활이었다. 대신 구들을 깔아 난방을 하는 방식으로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던 기억이 난다. 눈이 많이 오면 바깥 생할을 할 수 없었고, 어른들은 나무를 깎아 뭔가를 만들기도 했다. 수저나 젖가락, 목각 인형 같은 것들이었다. 때론 토끼 사냥도 했고, 무슨 목적인지는 몰라도 산을 타곤 했다. 눈 속을 헤치며 걷고 또 걸었던 기억들. 어릴적 눈에 대한 기억이다. 또 있다. 아마도, 국민학교 3학년 쯤 되었을 것이다. 충북 괴산에 계시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청주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폭설에 버스는 더 이상 갈 수 없었고, 캄..
겨울꽃, 동백꽃 선암사 숲길은 회색빛이다. 바람이 매섭다. 간간히 눈발이 날리더니, 우박이 되어 떨어진다. 그 길 끝에 빨간 동백꽃이 피었다. 추운 겨울에도 정답게 만날 수 있는 친구라는 의미로 세한지우(歲寒之友)라고 부르기도 했단다. 선비의 절개에 비유되기도 했던 동백은 겨울에 봐야 제 맛이 아니겠는가. 눈이라도 소복히 쌓였다면 그 맛은 배가 된다. 동백꽃은 송이채 뚝 떨어진다. 검붉은 꽃이 소복히 쌓인 동백나무숲은, 그래서 처연하다. 선암사 승선루 뒤에 피었다. 무주에도 눈발이 날립니다. 쌓이길 고대하고 있지만, 그를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군요. 강원도 폭설 사진으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여전히 눈이 그립습니다. 철이 덜 든게지요.
무주폭설! 폭설! 할 말을 잃었습니다. 간밤에 내린 눈의 양은 그동안 내린 눈보다 더 많아 보입니다. 장화를 신어도 눈이 들어 올 만큼. 도데체 얼마나 더 올까요? 눈 치울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420년 된 소나무가 힘들어 보입니다. 지난 봄 30cm가 넘는 폭설에도 잘 견뎌주었는데... 오늘 일정은 적상산 눈꽃트레킹이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눈이 그치고 나면 '적상산 마실길'이라도 다녀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