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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산사랑] 우연한 발걸음으로 덕유산에 안착한, 정정용·김현정 부부

by 눌산 2017. 1. 7.

 

 

의미 있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사람들은 새해 첫날에 산을 오르거나 바다로 향한다. 그곳에서 떠오르는 새해 첫 해를 바라보며 한 해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설국으로 알려진 무주 덕유산은 일출 명소로도 소문난 곳이다. 무주 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면 설천봉(1,529m)까지 단숨에 올라간다. 다시 20여 분만 걸으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인 덕유산 최고봉 1,614m의 향적봉이다. 12월부터 3월까지는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안개나 구름 등의 미세한 물방울이 급냉각 되어 나무에 얼어붙은 얼음꽃인 상고대는 덕유산 최고의 명물이다. 연간 70만 명이 방문하는 이러한 덕유산의 자연환경에 반해 아예 눌러 앉아버린 이들이 많다.

 

은퇴 후를 위한 준비로 시작한 펜션

어느 날 갑자기 덕유산 자락에 안착한 부부가 있다. 지인의 소개로 우연치 않게 땅을 사게 되고, 땅이 있어 집을 짓게 된 것. 더군다나 평생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펜션 주인이 되었다.

 

저 역시 산촌 출신이라 은퇴 후에 고향에 돌아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는 꿈을 막연히 꾸긴 했지만 펜션 주인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굳이 꿈이라면 작은 마을의 이장이 되어 봉사하며 사는 것이었죠.”

 

귀촌 2년차인 정정용(59)·김현정(58) 부부는 경남 김해에서 20여 년을 살다 두 해 전 덕유산 자락의 무주 삼공리 주민이 되었다. 리조트 입구인 삼공리는 크고 작은 펜션이 수십 개에 달하는 우리나라 대표 휴양지다. 덕유산과 무주구천동 계곡이 있고, 해발 600~800m를 넘나드는 고랭지로 한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다는 곳이다. 특히 겨울 설경은 감히 우리나라에서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고향이 무주에서 가까운 충북 영동 학산이란 곳입니다. 연로하신 아버님이 혼자 계시기에 늘 마음이 쓰였어요. 퇴직하면 고향이나 근처에 터를 잡을 생각은 하고 있던 차에 마침 리조트 펜션 단지에 맘에 드는 땅을 사게 되었지요. 노후를 위한 준비로 펜션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건물을 짓게 되었답니다.”

삼공리는 부부가 고향 방문길에 여행 삼아 드나들었던 곳이다. 그러다보니 지역에 대한 고민은 크게 하지 않았다. 단지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기에 김현정 씨는 남편에게 한 달만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결혼 후 줄곧 살림만 하던 사람이 펜션을 하게 될 줄도 몰랐고, 아무 경험도 없다보니 망설여졌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내가 당신을 30년 동안 먹여 살렸으니까 앞으로 30년은 당신이 나를 책임져라며 남편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생각났다.

 

남편이 그런 말을 하는 의도를 아니까 한번 해보자는 결심을 했죠. 은퇴 후에는 우리 부부만의 시간을 갖고, 도시와는 반대인 느린 삶을 사는 게 꿈이었으니까요. 사업이라는 생각보다는 자연 속에서 즐기며 일하자는 마음으로요. 하지만 현실은 다르더군요. 육체적으로 힘들고 무엇보다 내 시간 갖는다는 것이 어렵더라구요. 대신,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덕유산을 마당으로 두고 있다는 것으로 위안삼아 살고 있어요.”

 

자연과 좀 더 가까이, 나눔의 삶 살고파

 

만으로 1년 전인 20151224일 펜션 문을 열었다.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은 지난해 전라북도 건축문화상을 받았다. 한 해 최고의 건축물을 선정해서 주는 상이다. 방문객 공간과 가족 그리고 다실이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서로의 간섭을 피하고, 구석지고 길쭉한 대지를 충분히 활용한 틈새 공간 설계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외부에서 보는 건물의 규모에 비해 적은 객실 수와 화려하고 이국적인 풍경의 요즘 건물과는 다른 설계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천편일률적인 건축물에 대한 거부감에서 출발했어요. 사업을 우선으로 한다면 객실을 많이 만드는 게 맞겠지만, 저희 부부의 생활공간과 차를 마시는 공간,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취미인 도자기와 한국화 전시를 위한 갤러리를 부각시키자는 취지에서 주변 건물과는 다른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건물 구조를 보면 부부의 생활공간과 다실, 그리고 객실이 분리되어 있다. 다실은 부부와 손님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차를 즐겨 마시는 정정용 씨가 가장 애착을 갖고 꾸민 공간이다. 하나둘 모은 한국화와 다양한 모양과 재질의 다기가 전시되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차를 마시다 보니 차를 담는 사발에도 조예가 깊다. 다다(茶茶)펜션(http://www.mujudada.co.kr)이란 이름도 차와 사발의 의미에서 짓게 되었다.

 

정정용 씨는 현재 한국전력공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무주는 오지로 분류되어 선호지역이 아니다보니 쉽게 근무지를 무주로 옮길 수 있었다. 서서히 은퇴를 준비하는 중인데 정년퇴직이 3년 정도 남았지만, 덕유산에 들어 온 후 생각이 바뀌어 조기 퇴직을 할 생각이다. 펜션은 대부분 김현정 씨 혼자서 운영하고 관리한다. 정정용 씨는 퇴근 후에 바쁜 일을 거들어 주는 정도인데, 주로 손님들과 차를 마시고 대화를 한다. 조용한 산촌에서 휴식을 위해 찾는 여행자들과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1년 펜션을 운영하는 동안 몸무게가 15kg이나 줄어들었다는 김현정 씨는 완벽주의자다. 예약부터 손님맞이, 객실 청소까지 모두 혼자 처리 한다. 내 집에 온 손님처럼 대하다 보니 그만큼 할 일도 많다. 손님 입장에서야 하루나 이틀 밤에 지나지 않겠지만, 편안히 쉬어갔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러다보니 다시 방문하는 손님을 맞을 때는 보람을 느낀다. 여름과 겨울은 성수기다 보니 정신없이 지내고 잠시 틈이 나면 읍내에 나가 산촌 생활에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 20주간의 SNS 활용지도사 교육을 받았고, 취미 생활을 위한 한복 만들기와 아크릴페인팅도 문화원을 다니면서 배웠다. 김현정 씨가 특히 관심을 갖는 분야는 자원봉사이다. 김해에서 20년 간 해왔던 청소년 상담 자원봉사 활동이 몸에 배어 있어 자연스럽게 기회만 엿보고 있다. 최근에는 덕유산 국립공원 자원봉사자 등록을 하고 열심히 활동할 계획이다.

 

뜻하지 않게 계획이 앞당겨져 일찍 오게 되었지만, 건물을 짓고 펜션을 하면서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다보니 아직은 자연과 즐기는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어요. 산촌은 도시와 많이 다르잖아요. 공기와 물, 사람 등 그동안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을 곁에 두고 오래오래 함께 갈 겁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재주를 베풀면서 나눔의 삶을 살고 싶어요.”

 

도시를 떠나 산으로 간다는 것은, 그동안의 삶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과 시간에 치여 자신과 가족을 돌본 틈이 없는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고 가족과 함께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 말이다. 정정용·김현정 부부 역시 똑 같은 꿈을 꾸고 이제 그 꿈을 막 이루어가는 단계이다. 그래서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행복해 보였다. 언제든 와서 함께 차를 마시자며 작은 찻잔 하나를 선물로 건네받았다.

글·사진 눌산 http://www.nulsan.net

 

한국산지보전협회 산사랑 웹진 12호 1+2월호 (http://kfca.re.kr/sanFile/web12/02_01.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