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품고, 강을 벗 삼고 삶이 풍경이 되는 곳 /
강원 묵호항, 전라남도 구례
낮은 토담과 시멘트 블록 담장이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고샅을 걷는다. 오롯이 견디어온 세월만큼이나 나이 먹은 검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고, 줄줄이 매달린 빨랫줄이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임을 말해줄 뿐이다. 더러 빈집과 빈터가 눈에 띈다. 아이들 웃음소리도,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통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나둘 떠난 자리는 부지런한 촌로의 텃밭이 되었다. 이제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만 간다. 오롯이 견디어온 세월이 허무해지는 순간이다. 길은 사람의 발자국을 먹고 산다. 사람의 흔적이 뜸해질수록 담장 아래 이끼는 더 짙어진다. 허허로운, 소읍(小邑) 뒷골목 풍경이다.
한번쯤 뒤돌아보고 싶은 삶의 흔적들, 강원 묵호항
애초에 강원도행을 계획했던 목적은 눈(雪) 구경이었다. 동해안 일대 폭설 소식까지 들렸던 터라 나름 기대가 컸다. 그런데 웬걸, 목적지인 묵호항에 들어서자 지난 폭설의 흔적까지 지워버리는 세찬 비가 몰아치고 있었다. 강풍에 풍랑주의보까지 내린 포구에는 닻을 내린 어선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밤바다 구경은 고사하고 일찌감치 숙소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일기예보가 맑음인 것을 확인하고 일출을 기대하며 카메라 장비를 열심히 챙겨두었지만 역시나 검은 먹구름에 가린 하늘은 입을 꾹 다문 채 묵묵부답이다. 결국 한낮이 돼서야 하늘이 열린다.
묵호 상권의 중심지는 여전히 묵호항이다. 이러저러해서 과거의 영화는 사라지고,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묵호항은 동해안 어업의 최전방 전진기지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른 새벽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 쌓이고, 그곳을 무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하다. 그래서 묵호를 찾는 여행자라면 한 번은 꼭 거쳐가는 곳이기도 하다. 항구를 조금만 벗어나면 한적한 동해의 망망대해가 기다린다. 어달해변을 지나 대진항까지의 해안선과 묵호등대를 가운데 두고 산비탈을 중심으로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다. 마을 앞에 포구가 생기기 전 바다와 인접해 있어 게들이 많아 붙여진 지명이라는 ‘게구석골’과 산제를 지내던 제당이 있었던 ‘산제골’, 유일하게 논다랑이가 있었다는 ‘논골’, 등대가 있는 ‘등대마을’, 황태덕장이 있는 ‘덕장길’, 도깨비 전설이 전해오는 ‘도째비골’ 등 지명만으로도 묵호의 역사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묵호의 속살을 만나기 위해서는 한나절 정도 걷는 수고가 필요하다. 출발은 공영주차장이 있는 묵호항 수변공원에서 시작한다. 항구의 뱃고동 소리를 따라 걷다 보면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의 부산한 모습과 생기 넘치는 어판장까지 둘러볼 수 있다. 70번 이상 칼질을 해야 탄생한다는 오징어회 써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낸다. 좌판에 대여섯 마리의 대게를 올려놓고 “5만원!”을 외친다. 싸다. 대게는 이즈음이 제철이다. 생선회나 대게는 매일 가격이 달라진다. 주말보다는 주중이 저렴하고 기상상태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포구가 어민들 삶의 터전이었다면, 묵호등대 주변의 주택단지는 생활공간이었다. 삼척 일대의 무연탄을 선적하던 조그만 항구에서 1941년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한 묵호항은 그후 오징어와 명태잡이 배들로 북적였고 덕장이 형성됐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어부들과 그 가족들이 산비탈에 판잣집을 짓고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마을이 지금의 ‘논골담길’이 있는 동해시 묵호진동이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논골담길’을 걸어 등대로 향한다. 바닷가에서 등대로 오르는 길은 등대오름길과 세 군데의 논골담길(논골 1, 2, 3길)로 나뉜다. 어느 길로 가든 모두 등대에서 만날 수 있는, 바다를 등지며 걷는 비탈지고 비좁은 언덕길이다. 한때 동네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돌아다닐 만큼 잘나가던 시절의 영화는 지금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고단한 삶의 흔적들을 벽화로 남겨 놓았다. 이제는 흔하고 식상한 볼거리가 되어버린 다른 지역의 벽화마을 풍경하고는 사뭇 다르다. 천사날개 그림 대신 스토리가 있는 포구마을의 삶을 그림으로 풀어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래서 주민들은 벽화란 표현을 쓰지 않고 담화라고 불렀고, ‘논골담길’이라 이름 붙였다.
“1960∼1970년대 호황기를 거쳐 1980년대 들어서는 점차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이곳에 살던 주민들도 하나둘 떠났어요. 빈집이 늘어나면서 폐촌이나 다름없었죠. 우연히 지역에 애정을 가진 몇몇 사람들이 모여 보존 중심의 개발을 시작하게 된 게 바로 ‘논골담길’입니다. 2009년부터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마침 꽤 인기를 모았던 ‘찬란한 유산’이란 드라마의 한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알려지게 되었죠.”
10여년 전 산동네 풍경에 반해 눌러앉아버렸다는 등대펜션 주인 김진형씨의 얘기다. 등대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태평양이라도 사고 싶었단다. 그는 집 한 채를 사서 펜션 겸 카페를 시작했다. 그 후에도 주변의 빈집을 하나둘 사들여 펜션으로 바꾼 것이 모두 11채다. 규모로 따지면 거창한 리조트라도 세울 숫자지만, 그는 그 공간에 으리으리한 건물을 짓는 대신 산비탈 집들의 모습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꾸며 동해 바다를 자신의 정원으로 만들었다.
골목 ‘담화’에는 산비탈 동네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다. 겨우 사람 한 명 지나다닐 만큼 좁고 가파른 골목길에 지게를 지고 오르내리던 사내의 모습과 젖은 오징어가 담긴 대야를 머리에 인 아낙을 그린 벽화가 인상적이다. 어깨가 부딪힐 만큼 위태롭게 매달린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는 ‘소변금지’라든가 ‘집 나간 개를 찾는다’는 내용 같은 해학적인 표현의 그림도 그려져 있다. 그 시절, 논골에는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있었다. 지게에 진 생선에서 바닷물이 흘러내려 늘 질퍽한 골목길을 걸어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그 길을 걸어야 덕장이 있었으니, ‘담화’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징어를 말리기 위해 이고지고 오르내리던 고단한 삶의 흔적들이 담겨 있다.
낮은 담과 지붕 덕분에 ‘논골담길’을 걷는 내내, 고개만 돌리면 푸른 동해 바다를 눈에 담을 수 있다. 항구의 풍경과 항구를 드나드는 고깃배들의 뱃고동 소리가 풍취를 더한다. 풍경 하나는 기가 막히다. 태평양이라도 사고 싶었다는 펜션 주인의 말이 이해가 된다.
골목 끝에 등대가 있다. 묵호해양문화공간이란 이름의 소공원에서 해발고도 67m에 자리 잡은 등대에 오르면 먹빛 바다와 멀리 두타산, 청옥산까지도 조망이 가능하다. 소공원에서는 등대오름길과 논골 1, 2, 3길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좌측 등대오름길로 내려서면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이승기와 한효주의 감동적인 첫키스신으로 유명해진 도째비골 협곡에 걸린 출렁다리를 건너 어달해변으로 이어진다. 소공원 매점 우측 골목은 논골 3길이고, 좌측 골목은 논골 1, 2길이다. 모두 항구 주변에서 만나는 길로, 중간에 있는 ‘바람의 언덕’은 꼭 들러 봐야 한다. 등대가 자리한 언덕 모서리 부분으로 바다에 나간 가장을 기다리는 ‘만복이네’ 동상이 세워져 있다. 고깃배가 들어올 시간이면 아기를 업은 마을 아낙들이 배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이곳에 몰려들었다. 어선마다 내걸린 상징 깃발을 보고 가장의 배를 확인했다. 해상사고가 잦다 보니 가장의 생사를 확인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아이들과 아낙들은 ‘우리 배가 돌아왔다’고 외치며 무사귀환을 기뻐했고, 항구로 달려나갔다.
‘바람의 언덕’은 정확한 바람의 세기를 관측하던 풍량 관측소가 있던 자리로 마을주민 58명이 출자해서 만든 ‘논골담길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 있다. 산비탈 모서리에 위치해 있어 전망으로 치자면 최고다. 조합장인 이상학씨 역시 묵호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주민 주도의 운영을 통해 발생한 수익금의 절반은 마을의 환경정화나 시설보수 등에 사용한다.
논골 3길을 걷다 전라도 화순에서 시집왔다는 어르신을 만났다. 40년 전 명태와 오징어가 지천으로 널렸던 시절 남편을 따라 오게 됐다는 장규순 할머니다. 관광지가 되면서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적적한 동네에 젊은 사람들이 드나드니 얼마나 좋아” 하신다.
‘논골담길’에서는 굳이 표지판을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어디서든 보이는 등대만 보고 올라가면 되고, 항구를 보고 내려서면 되기 때문이다. 긴 골목을 돌아 어달해변으로 내려섰다.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로 요란하지 않은, 호젓한 바닷가에 분위기 좋은 10여곳의 커피집이 문을 열고 있다.
여행 Tip
청량리역에서 묵호역까지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4회 운행, 약 5시간 소요된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동해버스터미널까지 하루 24회 운행하며 약 3시간이 소요된다.
묵호등대 바로 아래 ‘등대펜션·카페’(http://묵호등대펜션.kr)는 주변에서 전망이 가장 좋다. 카페에서 바라보는 야경 또한 일품으로 이곳에서 묵호 여행은 대부분 걸어서 가능하다. 논골 2길 구간에 있는 ‘논골담 민박’(010-8288-8341)은 방 3개 딸린 독채로 2인에서 10인이 이용 가능하다. 비용은 7만원에서 20만원.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건강한 여행지, 전남 구례
소싯적 산 좀 타봤다는 중년이라면 구례에 대한 추억 하나쯤 간직하고 있으리라. 구례는 지리산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새벽 기차에서 내린 커다란 배낭을 둘러멘 등산객들은 해장국 한 그릇을 비우고는 화엄사로, 노고단으로 향했다. 여전히 그 중년들은 지리산을 그리워하고, 구례를 동경한다. 아예 지리산 자락 어디쯤으로 터전을 옮긴 이들도 있다. 노고단이 보이는 산동면 지리산 온천 단지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정영혁(56)씨도 그중 한 명이다.
“평생 지리산에서의 삶을 꿈꾸며 살았어요. 주변에는 저처럼 마음속에 품고 살던 지리산 자락에 정착한 이들이 많은데, 그들에 비해서는 늦은 나이지만 꿈을 이루었으니 복이 많은 사람이죠.”
정영혁씨가 운영하는 ‘노고단 게스트하우스’의 운영방침은 독특하다. 오직 지리산을 오르는 이들을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내 인테리어부터 지리산으로 꾸며져 있다. 빈 벽에는 지리산 둘레길과 지리산 호수길, 산수유 꽃담길 등 주변의 걷기 좋은 길의 지도벽화가 그려져 있다. 특히 옥상에는 노고단 전망대도 만들어놓았다. 노고단 아래 성삼재와 만복대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산수유마을 꽃담길로 향한다. 때는 한겨울이지만 빨간 산수유 열매가 꽃처럼 매달려 있다. 아니 꽃보다 더 붉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노란 산수유꽃은 없지만, 빨간 열매가 매달린 풍경 또한 멋지다. 이즈음에는 집집마다 가을에 수확한 산수유 열매를 말리는 풍경도 볼 만하다. 산수유 열매를 말리는 작업을 하던, 길에서 만난 어르신은 “나는 꽃보다 이 열매가 더 좋은디…. 돈이 된께” 하시며 수줍게 웃으신다. 나지막한 돌담이 정겨운 꽃담길은 지리산 온천단지에서 상위마을을 한 바퀴 도는 약 4㎞ 코스다. 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한 계절이라 그런지 만나는 주민마다 다 친절하다.
지리산 온천랜드 건너편에 있는 계척마을 산수유 시목지에서는 ‘남도 백의종군길’이 이어진다. 명령불복죄로 한산도에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된 충무공 이순신은 의금부 감옥에서 모진 고초를 겪은 끝에 백의종군의 명을 받고 지금의 합천 땅까지 걸어간다. 의금부가 있었던, 서울 종각에서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를 거쳐 경상도 땅에 이르는, 무려 640여㎞ 거리인 이 길은 해군역사기록관리단으로부터 위탁받은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소장 임원빈)와 각 지자체의 고증작업을 거쳐 현재 최종 완성 단계에 있다.
‘남도 백의종군길’ 구례구간 제1코스는 산수유시목지 계척마을에서 출발하여 광의면 사무소까지인 총 11.7㎞ 거리로 지리산 호수공원을 지난다. 전체 코스를 다 걷자면 서너 시간 걸리지만, 그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호수공원 일대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수상유원지와 치즈랜드가 있는 거대한 목초지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 건너에 있는 치즈랜드에서는 풀썰매타기와 치즈만들기, 승마체험을 할 수 있다.
가볍게 산책만 하겠다던 계획이었는데 오전 내내 길 위에서 보내 버렸다. 걷기는 눈에 보이는 풍경보다 더 깊은 여운을 준다. 자동차를 타고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깊숙한 곳에 감춰진 보석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제,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풍요로운 땅 구례의 맛을 보러 읍내로 향한다.
필자에게 구례는 고향 같은 곳이다. 필자의 고향마을인 섬진강 상류에서 구례까지는 버스로 1시간쯤 되는 거리로 산촌에서는 귀했던 갯것을 사기 위해 해산물이 풍부한 구례장을 어머니와 다녔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장터가 이전하면서 그 시절 드나들었던 팥죽집이나 국밥집은 사라져버렸지만, 어릴 적 다녔던 한약방은 여전히 3대째 운영되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청년 시절에는 지리산을 드나들기 위해 참 많이도 구례를 거쳤다. 그 시절 산(山)친구들과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녔던 구례 읍내는 지금도 예전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아무데나 가도 먹을 만할 거요. 외지 사람들은 산채정식을 좋아하더만, 나는 얼큰한 갈치탕이 맛있습디다.”
읍내에서 만난 택시기사에게 근처 맛집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갈치탕과 산채정식 중, 어릴 적 먹었던 그 맛이 생각나 갈치탕으로 정하고 찾아간 곳은 등산객들을 통해 입소문이 난 영실봉식당이다. 보통은 갈치조림을 하지만, 이 집은 남도식 갈치탕이 주 메뉴다. 다른 점은 늙은호박이 들어간다는 것. 단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어우러져 얼큰한 탕과 아주 잘 어울린다. 갈치구이도 함께 맛보고 싶다면 ‘꾸고 지지고’를 시키면 된다. 구이와 탕이란 얘기다.
구례읍내를 한눈에 감상하고 싶다면 구례 사람들에게는 봉산으로 통하는 봉성산에 오르면 된다. 구례등기소 뒤편 궁도장이 있는 봉덕정이 들목으로 20분만 걸으면 전망대에 도착한다. 주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는 곳으로 멀리 지리산의 파노라마와 섬진강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등기소 뒷골목을 따라 문화원과 북초등학교로, 다시 읍사무소에서 중앙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길은 읍내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가다. 굳이 중심가가 따로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구례읍내는 작다. 버스터미널이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대부분의 상권도 따라 이동했지만, 구례경찰서 앞 로터리 주변을 중심으로 여전히 상가가 밀집되어 있다. 오래전 버스터미널이 있던 곳으로, 귀촌인들이 운영하는 빵집과 커피집도 들러볼 만하다.
구례는 장수의 고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여러 기관에서 조사한 자료들에 의하면, 그 답을 물과 공기에서 찾을 수 있다. ‘공기의 비타민’으로 불리는 음이온이 대도시에 비해 10배 높게 측정이 되었고, 미세먼지는 10분의 1 수준이었다니 지리산이 내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수마을로 알려진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에는 ‘지리산 약초 뿌리가 녹아내린 물이 흐른다’는 당몰샘이 있다. 장수의 비결인 장수샘으로 알려지면서 여전히 물 맛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당몰샘이 있는 마산면 사도리와 인접한 토지면 오미리에는 전통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고택과 한옥단지가 있다. 당몰샘과 마주한 쌍산재는 해주 오씨인 현재 집주인의 6대조가 처음 터를 잡았고, 고조부가 서당인 쌍산재를 지어 오늘에 이르렀다. 양반가옥이라고 하기엔 너무 소박하다. 대신 이웃집 분위기의 편안함이 느껴진다. 집 뒤로는 마치 비밀의 정원 같은 대숲이 숨겨져 있다.
구례를 대표하는 고택인 운조루와 곡전재는 이웃한 오미리에 있다.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사는 집’ 혹은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을 지닌 운조루(雲鳥樓)는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금환낙지(金環落地)라 하여 천하의 명당으로 손꼽히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같은 오미리 마을에 있는 곡전재는 높고 긴 돌담이 독특한 고택이다. 수목원 못지않게 잘 가꾸어진 정원이 아름답다. 관람 안내 표시를 따라가며 입구부터 뒤란 대나무숲까지 둘러볼 수 있고, 한옥 체험도 가능하다.
여행 Tip KTX의 개통으로 서울에서 구례구역까지 2시간 초반대로 단축되었다. 용산역에서 KTX와 새마을호, 무궁화호가 하루 15회가량 운행한다. 버스나 승용차는 3시간 거리. 순천~완주고속도로 구례화엄사IC에서 10분 거리에 리조트와 다양한 숙박시설을 갖춘 지리산 온천단지와 지리산을 찾는 여행자들의 쉼터인 노고단게스트하우스(http://nogodanguesthouse.com)가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사전에 예약하면 픽업도 가능하다. 이 외에도 고택 숙박과 체험이 가능한 쌍산재(http://www.ssangsanje.com)와 곡전재(010-5625-8444)가 있다. 2대째 문을 열고 있는 갈치탕 전문 영실봉식당(061-782-2833)은 구례읍 우체국 옆 골목에 있다. |
[글·사진] 눌산 여행작가
주간조선 [2441호] 2017. 1. 16 발행
-->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9&nNewsNumb=002441100018
'여행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사랑] 스스로 택한 느리고 게으른 삶, 피아골 한귀연 씨 (2) | 2017.03.08 |
---|---|
[주간조선] 이야기가 있는 소읍(小邑) 기행 5 / 강원 양양·경북 춘양 (0) | 2017.02.21 |
[산사랑] 우연한 발걸음으로 덕유산에 안착한, 정정용·김현정 부부 (1) | 2017.01.07 |
[주간조선] 이야기가 있는 소읍(小邑) 기행 3 / 충남 홍성·경남 의령 (2) | 2017.01.03 |
[주간조선] 이야기가 있는 소읍(小邑) 기행 2 / 충북 옥천·전북 정읍 (3) | 2016.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