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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이야기

옛길 끝에서 만난 산촌(山村) 벌한마을

by 눌산 2023.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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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설(春雪) 내린 산마을 풍경

옛길 끝에서 만난 산촌(山村) 벌한마을

안개 자욱한 벌한마을 가는 옛길

입춘이 지나고 며칠 후, 춘설이 내렸다. 간밤에 눈발이 날리는 것을 보고 잠자리에 든 터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창문을 열었다. “왔네. 왔어!” 마당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지체없이 카메라를 둘러메고 나갔다. 하지만 웬걸? 해발 500미터인 기자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자 눈은 보이지 않았다. 허탈한 마음에 눈이 쌓여 있을 만한 골짜기를 찾아갔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곳에는 기자가 사는 동네보다 세 배는 더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춘설 내린 벌한마을

신선의 땅, 벌한마을

그곳은 설천면 두길리 벌한마을이다. 설천 출신이라면 버라니가 더 익숙한 지명으로 벌한마을은 무주에서 가장 산촌으로 소문난 곳이다. 설천면 소재지를 벗어나 라제통문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구천동 벚나무 가로수길을 지나면 벌한마을 들목인 구산마을이다. 여기에서 구천동 계곡을 건너 딱 4km만 올라가면 벌한마을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옛길도 있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옆 계곡 건너에 있는 이 길 역시 구산마을에서 시작한다. 사선암과 선인봉(1,156m), 거칠봉(1,178.3m)이 둥그렇게 감싸고 있어 마을 풍경이 아늑하다. 하지만 벌한마을은 북향 골짜기다. 생각만 해도 한겨울 매서운 북풍이 상상되지만, 벌한마을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열한 명의 신선이 있어 북향 골짜기답지 않게 추위 걱정은 안 하고 산다고 한다.

먼저 왼쪽 골짜기 끝에 사선암(四仙巖)이 있다. 예전에는 벌한마을 사람들이 무풍 장을 보러 다니던 길목의 고개다. 사선암은 네 명의 신선이 노니는 바위라는 뜻으로 신라 화랑 네 명, 또는 네 명의 신선이 노닐던 곳이라는 얘기가 전해온다. 그런 전설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바둑판이 사선암 위 너럭바위에 새겨져 있다. 누가, 언제 새겨놓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거칠봉(居七峰)은 말 그대로 일곱 명의 신선이 있는 산이라는 의미다. 하여, 사선암과 거칠봉에 있다는 총 11명의 신선이 마을을 보호하고 있어 벌한마을 사람들은 추위는 물론 질병과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벌한마을 가는 길

옛길을 걷다 보면...

구산마을에서 계곡을 건너면 벌한마을 가는 옛길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 다시 벌한천을 건너면 옛길로 들어간다. 한겨울에는 주변 시야가 트여 계곡 풍광을 즐기며 걸을 수 있다. 옛길은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천천히 고도를 높인다. 경사 또한 완만해서 걷기를 즐기지 않는 초보자나 어린아이도 갈 만하다.

옛길의 묘미라면 오래전 이 길을 걸었을 사람들에 대한 흔적을 만나는 일이다. 아름드리 거목 아래에는 어김없이 쉬어갈 만한 너럭바위가 있고, 화전민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나지막한 담장처럼 보이는 돌담은 사람이 살던 집터였다. 계단식으로 층층이 쌓아 올린 돌무더기는 논과 밭으로 쓰였던 농토다. 시간이 흘러 돌담은 대부분 무너지고, 논과 밭이었던 자리는 나무가 자라 숲으로 변했다. 본래 모습 그대로,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되돌아간 것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고 한다면, 사람과 자연은 하나의 공동체다. 살기 위해 농토를 개간하면서 숲의 일부를 잠시 빌려 썼다면, 그 목적이 사라졌을 때는 고스란히 돌려주는 게 옳다. 그런 의미에서 벌한마을 옛길에 남아 있는 사람의 흔적들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중이다.

옛길이 좋은 이유는 또 있다. 걷기에 편하다는 것. 인위적인 길이 아닌, 자연발생적인 길이다 보니 길에 구조물이 있을 리 없고. 반듯한 길도 없다. 나무와 바위를 피해 형성된 길은 구절양장의 꼬불꼬불 꼬부랑길이다. 벌한마을을 900m 남겨두고 옛길은 자동차 길과 만난다. 마을 입구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몇 그루와 한천재(寒泉齊)가 있다.

벌한마을
벌한마을

 

벌한마을은 지금, 고로쇠 철

눈이 그치고 다시 찾아간 벌한마을에서 고로쇠 채취 작업이 한창인 배대호 씨를 만났다. 뼈에 이롭다고 해 골리수(骨利水)라 불리는 고로쇠 수액은 2월부터 시작해 3월 말까지가 제철이다. 고로쇠는 일교차가 15도 이상 나야 하고, 볕이 좋은 날 수액이 잘 나온다고 한다. 칼슘과 칼륨, 마그네슘 등 무기질과 미네랄을 함유해 뼈와 이뇨,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는 한동안 중단됐던 구천동 덕유산 고로쇠 축제도 열린다. 배 씨는 벌한마을은 무주에서도 고지대에 있어 우리 마을에서 생산되는 고로쇠는 맛과 질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라며 벌한마을 고로쇠 자랑을 했다. 배 씨 형제는 한 철에만 4천 리터 정도의 고로쇠 수액을 생산한다. 반디랜드 옆 농특산물판매장에서 직접 구매도 가능하고, 전화주문을 통해 택배로도 받아볼 수 있다.

소복이 쌓였던 춘설이 봄 눈 녹듯사라졌다. 이제, 겨울의 끝이 보인다. 긴 터널 끝에 선 느낌이랄까. 희미한 빛을 따라 한 발자국만 떼면 봄을 만날 것 같다. 새봄이 머지않았다.

고로쇠 수액 채취를 준비하는 배대호 씨

[알고 가면 좋은 tip]

벌한마을 가는 옛길은 구산마을 건너편에서 시작한다. 거리는 약 4.3km, 1시간 30분 내외 소요된다. 벌한마을 고로쇠 문의 010-9394-3056 (배대호)

 

무주신문 2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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